9주기를 맞이한 '강남역 여성혐오 살해사건'
끊임없이 발생하는 '여성혐오 범죄', 여전히 제도 미비
여성시민단체 "정치가 책임져라"

(MHN 조윤진 인턴기자) '강남역 살인사건'이 9주기를 맞이했다.
■ 9년 전 오늘,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하다
2016년 5월 17일 오전 1시 5분, 서울 서초구 강남역과 신논현역 사이에 위치한 건물 화장실에서 23세 여성이 흉기에 찔려 숨졌다. 이는 흔히 '강남역 살인사건'이라 알려진 사건이다.
사건의 범인, 당시 30대 남성이었던 김성민은 범행 전날 밤부터 해당 건물에 숨어 있었다. 김성민은 범행을 위해 화장실에서 무려 1시간 30분 동안 대기했다. 범행 전, 남성 6명이 화장실에 출입했으나 김성민은 그들을 그냥 보냈다. 그리고 피해자 A 씨가 화장실에 들어오자 가슴 부위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A 씨의 지인이 살해된 A 씨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고, 사건 발생 10시간 후 경찰은 김성민을 검거했다. 김성민은 범행 사실을 부인했으나, 약 6시간 만에 인정했다.
그는 일면식 없던 A 씨를 무참히 살해한 범행 동기에 대해 "평소 여자들이 날 무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이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냐는 질문이 제기됐다.
그러나 검찰은 이를 그저 '묻지마 범죄'로 판단했다. 김성민의 조현병에 의한 것이라고 말이다.
또한 검찰은 김성민의 정신질환 병력 외에도, 휴대전화에서 여성혐오 관련 검색어 및 자료가 발견되지 않은 점, 여성과 한 차례 교제한 경험이 있는 점, 성인물을 시청한다는 점, 유흥업소에서 여성을 만나려 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어처구니 없는 검찰의 설명에 분노 여론이 불거진 바 있다.
한편, 검찰은 김성민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하지만 1심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김성민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고, 항소심에서도 원심과 같이 징역 30년이 선고됐다.

■ '강남역 살인사건' 9주기, 추모 집회의 현장
지난 17일 오후 6시, 젠더폭력 해결 페미니스트 연대를 비롯한 95개 여성시민단체가 사건 현장이었던 서울 서초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9주기 추모행동-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를 개최했다. 피해자를 추모하고, 여전히 여성 대상 범죄와 혐오가 계속되는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서다.
약 150명이 검은 옷과 마스크 차림으로 집회에 참석했다. 굵은 빗줄기 속에서도 참가자들은 결연한 모습을 보였다. "살아남은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페미니스트의 힘으로 여성폭력 끝장내자" 등 구호를 외치며, 9년이 흘러도 여성폭력이 반복되는 현실을 비판했다.
추모 집회를 주관한 서울여성회 박지아 성평등교육센터장은 "강남역 같은 추모 공간이 9년간 너무 많이 늘어났다. 인하대, 신당역, 신림동 등산로, 강서구 주차장, 부산, 경남 진주에서 여성들이 죽고 폭력을 당했다"고 발언했다.
또한 그는 "역사 속에서 여성과 페미니스트들이 한 번도 투쟁을 멈춘 적 없던 것처럼, 우리도 또다시 투쟁으로 길을 만들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며 "강남역에서 시작된 투쟁이 사회적 흐름으로 이어졌듯, 오늘 다시 모인 우리의 외침도 새로운 길을 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여성폭력 스톱(STOP)'이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과 함께, '다이인(die-in·죽은 것처럼 드러눕는 시위)' 퍼포먼스를 펼쳤다.
참가자들은 빗속에서 5분간 강남역 인도에 누워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시민들도 강남역을 지나던 발걸음을 멈추고 시위 현장을 지켜보았다.
또한 정치권이 여성폭력을 외면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여성폭력 정치가 책임져라", "우리는 여성 폭력 책임질 대통령을 원한다"고 구호를 외치며, 정치권에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했다.
강나연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 운영위원은 "시민의 힘으로 대선을 만들었지만, 거대 정당들은 여성폭력을 해결하겠다는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간호사로 재직 중인 김정은 보건의료노조 서울본부 성평등위원장도 병원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성폭력 위협에 일상적으로 노출되고 있다며 "대한민국 곳곳에서 여성들이 감당하고 있는 이 구조적인 폭력을 언제까지 방치할 거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김 위원장은 "대선을 앞두고 성평등 의제는 정치권에서 철저히 지워졌다"며 대선 후보들에게 성폭력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라고 요구했다.
이번 추모 행동을 마무리하며 참가자들은 성명서를 통해 "이번 대선에서 여성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거리에 눕고, 여성폭력을 책임질 대통령에게 투표할 사람들을 모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오후 3시에는 '여성혐오폭력 규탄 공동행동'이 지하철 4호선 미아역 1번 출구 앞에서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규탄하는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는 지난 4월 22일, 서울 강북구 미아역 인근 마트에서 김성진이 흉기로 60대 여성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40대 여성에게 중상을 입힌 사건을 규탄하기 위해서다.
공동행동은 "명백한 여성혐오 범죄이자 여성 대상 테러"라며 "경찰이 미아역 여성 살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명명하고 강력히 수사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지난 12일에도 젠더폭력 해결 페미니스트 연대 등 85개 여성단체가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 9주기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어, 마찬가지로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모여 정치권에 여성폭력 문제 해결을 촉구한 바 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우리는 강남역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우리는 여성폭력 책임질 대통령을 원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강남역 사건 이후에도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부산 돌려차기 사건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 사건은 계속해서 발생했으며, 엔(N)번방 사건과 딥페이크 성범죄 등 온라인에서도 여성 폭력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사회대개혁을 말하는 지금, 민주주의의 주역인 여성들의 최소한이자 가장 큰 요구는 사회가 여성 폭력 해결을 책임지는 안전한 사회"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여성혐오와 폭력이 여전함에도 사회와 정치권이 이를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점을 비판했다.
김주희 널싱페미 대표는 "9년 전 강남역 살해사건 당시 가해자가 '여자들에게 무시를 당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했음에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이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25년에도 우리는 매일 뉴스에서 여성이 살해되거나 폭력의 피해자가 된 사건을 접하지만 여성 혐오 범죄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여성 혐오를 지우는 이 사회가, 여성을 지우는 정치가 강남역 사건 이후의 세상을 변하지 못하게 만든 가장 큰 장벽"이라고 일갈했다.
또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여성 혐오 정치에 대한 비판도 존재했다. 그뿐만 아니라 탄핵 국면에서 2030 여성이 주축이었음에도 대선을 앞둔 지금 여성 의제가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보면, 여성의 안전과 권리 보장에 관한 내용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변정아 부천새시대여성회 사무국장은 "언론과 정치는 탄핵 광장을 열어낸 여성들의 투쟁을 칭송했지만, 탄핵 이후 여성의 삶은 다시 뒷전이 된 듯하다"며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겪는 다양한 폭력이 여성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이때, 정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지적한 바 있다.
■ 강남역 살인사건, 그 후 9년...여전히 끔찍한 현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은 사회적 충격을 안기며 추모 물결을 만들어 냈다.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여성의 안전과 권리 보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냈다. 또한 스토킹 처벌법 제정 등 관련 법률의 강화로 이어졌다.
이 사건은 특히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명명과 관련 예방 및 올바른 대응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논의를 촉발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법·제도적 개념 정립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경찰은 법률적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여성혐오 범죄'를 명명하지 않고, 여성혐오가 동기가 된 범죄를 따로 집계하지 않는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9주기를 맞이한 지금까지도 여성 살인 범죄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마치 일상처럼 발생한다.
2022년 9월에는 전주환이 직장동료인 여성 역무원을 스토킹하고 신당역 화장실에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2024년 5월에는 서울 소재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최동욱이 서울 서초구의 아라타워 빌딩 옥상에서 자신과 교제하던 20대 여성을 수차례 칼로 찔러 살해했다.
이외에도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넘쳐난다. 2024년 발생한 '편의점 숏컷여성 폭행사건'과 같이 여성을 무차별 공격하는 폭행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강남역'은 늘어나고 있다. 추모해야 할 사건은 더욱 많아진다. 과연 언제까지 여성들은 안전한 사회를 요구해야 하는가. 오직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안전한 일상을 영위할 수 없고, 폭력에 시달려야 하는 이 현실에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정치권은 반드시 변화해야 한다.
경찰은, 검찰은, 사법부는, 대한민국 정부는 이제 여성혐오 범죄를 규탄해야 한다. 여전히 미비해 있는 여성혐오 사건 피해자에 대한 보호 장치 또한 마련해야 하고,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특히 경찰은 여성혐오 범죄를 '여성혐오 범죄'라고 제대로 명명하고 관련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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