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으로 99% 진 바둑이 한국 바둑룰 때문이라고?

(MHN스포츠 엄민용 선임기자) 변상일 9단이 LG배 기왕전 최종국에서 중국의 커제 9단에게 기권승을 거두며 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2023년 제14회 춘란배에 이어 메이저 세계대회 두 번째 우승이다. 하지만 커제 9단의 석연치 않은 ‘투정’으로 변상일 9단은 맘껏 웃을 수 없었다.
23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 신관 대국장에서 열린 제29회 LG배 결승 3번기 최종국에서 변상일 9단이 커제 9단을 맞아 159수 만에 기권승을 거뒀다. 이날 대국은 커제 9단이 경기 규칙을 위반하고, 이를 지적하는 심판에 항의하며 대국 개시 3시간 45분 만에 일시 중단됐다. 이어 심판이 커제 9단에게 벌점 2집을 부과한 데 대해 커제 9단이 불복하고 대국장을 떠나 변상일 9단의 기권승으로 처리됐다.

한국 다르고, 중국 다른 ‘바둑룰’
이날의 논란은 한국과 중국의 다른 경기 규칙 때문에 빚어졌다. 하지만 이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던 일로, 그동안 양국의 경기 규칙이 다른 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모든 대회가 주최국의 바둑 행정기관이나 대회 주최자가 정한 규칙에 맞춰 승부를 벌여 왔기 때문이다. 가장 단순한 예로, 한국 바둑에서는 흑이 부담하는 덤이 6집반이지만 중국 바둑에서는 7집반이다. ‘바둑 올림픽’으로 불리는 응씨배는 덤이 8집으로 ‘전만법’이라는 고유의 계가 방식으로 승부를 가린다.
한국 바둑과 중국 바둑은 대국을 마치고 집을 세는 방식도 다르다. 중국에서는 바둑판 위에 남아 있는 자신의 돌 수를 집으로 친다. 잡은 상대편 돌은 승부와 아무 관련이 없다. 반면 한국 바둑에서는 자신이 지은 집 수만을 세어 승부를 가리는데, 이때 자신이 잡은 상대편의 돌로 상대의 집을 메운다. 따라서 잡은 상대편의 돌이 승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중국 바둑에서는 ‘내가 잡은 상대편 돌’, 즉 ‘사석’을 아무렇게나 취급한다. 심지어 잡은 돌을 다시 상대편 돌통에 넣기도 한다. 그래도 반상 위의 내 집 수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바둑에서는 ‘사석’이 아주 중요하다. 특히 상대가 사석을 감출 경우 자신의 집 수를 계산할 때 착오가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 바둑에서는 사석은 반드시 사석통에 담아 상대가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어기고 상대가 사석 수를 세지 못하도록 사석을 다른 곳에 두는 것은 비신사적 행위로 보아 1회 위반 시 경고와 함께 2집의 벌점을 부과하고. 2회 위반 시 심판이 반칙패를 선언한다.

한국선수도 ‘중국룰’ 때문에 종종 눈물
한국과 중국은 오래전부터 나름의 바둑문화를 가꿔 왔고, 이를 근거로 만들어진 규칙은 각국이 주최하는 대회에 각각 따로 적용돼 왔다. 이로 인해 한국 선수들이 중국 대회에서 ‘한국 룰로는 이기고, 중국 룰로는 지는 아픔’을 수차례 겪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커제 9단은 달랐다. 커제 9단은 전날 열린 결승2국에서도 사석을 사석통에 넣지 않고 다른 곳에 놓아둔 채 대국을 진행하다 1차 경고와 함께 벌전 2집을 부과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똑같은 규칙 위반을 반복해 반칙패를 당했다. 그리고 이날 또다시 같은 규칙 위반을 범했다. 그러고는 이를 지적하는 심판에게 격하게 반발하고, 결국 대국 포기를 선언했다.
하지만 규칙 위반에 따른 벌점 부과 여부에 관계 없이 이날 승부의 저울추는 이미 백을 잡은 변상일 9단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상태였다. 커제 9단이 초반에 큰 착각으로 엄청난 손해를 봤기 때문이다. 그냥 불계패를 선언해도 무방할 정도의 착각이었다. 그 여파가 이어져 대국이 중단됐을 당시 인공지능 승리 예상치는 ‘백승 99%’를 가리키고 있었고, 집으로는 백이 무려 23집가량 앞선다고 분석하고 있었다. 이를 바둑TV로 생중계하던 박정상 9단이 “이제는 알파고가 둬도 안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커제 9단은 심판의 지나친 간섭 탓에 승부를 이어갈 수 없다며 자신의 패배 원인을 ‘한국의 바둑룰’과 ‘심판’에게 돌리고 대국장을 떠났다.
한국·중국 바둑팬들 격한 감정 쏟아내
커제 9단의 이런 행동은 중국 바둑계에도 영향을 미쳐 한국 바둑계에 대한 비난의 여론이 일고 있다. “한국과의 바둑교류를 중단하고, 중국 내 한국인 바둑기사도 퇴출시켜야 한다” “한국이 두 명의 심판 판정으로 우승을 가져갔구나. 축하한다” “한국인들은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구나” “정말 어처구니없고, 엽기적이며, 상식 밖이다. 경멸한다” 등 격앙된 목소리가 많다.
그러나 한국 바둑팬들은 중국의 이런 반응을 못마땅해하고 있다. 한국이 주최국인 대회에서 중국 규칙을 적용할 수는 없고, 한국과 중국 선수에게 각각 다른 규칙을 적용할 수는 더더욱 없다는 것이 한국 바둑팬들의 반박이다. 규칙과 심판도 대회의 일부로, 규칙과 심판이 필요 없는 경기는 그냥 놀이일 뿐이라고 지적하는 바둑팬들도 있다.
이렇듯 제29회 LG배 결승 3번기를 두고 한국 바둑팬과 중국 비둑팬들이 격한 감정을 드러내면서 한동안 양국 바둑계에 냉랭한 기류가 흐를 조짐이다.
한편 LG가 후원한 제29회 LG배 기왕전의 우승 상금은 3억 원, 준우승 상금은 1억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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