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은 우리 시대의 전문 서평가와 젊은 서평가들이 함께 이끌어 가는 코너입니다. 깊은 생각과 참신한 눈길로 이 시대의 의미 있는 책들을 소개합니다.

 

■ 마법소녀 복직합니다 (박서련 지음 / 창비)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1990년대에 전성기를 맞은 ‘마법소녀물’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변화를 거쳐왔다. ‘마법소녀’라는 이름 그대로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고 평소에는 정체를 숨기고 있다가 필요할 때 ‘변신’을 해 코스튬을 입고 사랑의 힘으로 악에 맞서는 밝고 희망찬 이야기. 이것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마법소녀물의 기본 구조다. 

하지만 박서련의 <마법소녀 복직합니다>는 위와 같은 ‘마법소녀’라고 불리는 이들이 등장하지만, 우리가 익히 보던 그 마법소녀물과는 전혀 다르다. 주인공이 ‘소녀’도 아니고, 마법소녀물의 상징인 변신과 마법도 선명하게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각종 현실의 문제들과 싸우는, 희망과는 거리가 먼 다소 어두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법소녀물의 정신은 빼놓지 않는다. 바로 사랑과 믿음이다. 

시대가 흐르며 이 기본 구조에 변화를 주는 요소들이 하나씩 등장하기 시작한다. ‘소녀’가 아닌 인물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희망과는 거리가 먼 전개를 보여주기도 한다. 심지어는 중년 남성이 마법소녀로 변신하는 만화와 게임들이 나오기도 할 정도다. 1990년대에 마법소녀물을 소비하던, 당시에 어린이였던 어른들을 타깃으로 하고 있어서일까. 다양한 장르적 재미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랑과 믿음의 힘이 빠지는 경우도 많다. 사랑의 대상이 무엇인지는 상관없다.

마법소녀의 가치관과 동력으로 여겨지는 ‘사랑의 힘’이 빠진다면 굳이 ‘마법소녀 스킨’을 입힌 전혀 다른 캐릭터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 점에서 화려한 ‘마법’을 쓰지 않고 심지어 ‘소녀’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마법소녀의 근본은 잊지 않은 <마법소녀 복직합니다>가 반갑게 느껴졌다. (김현구 / 문화비평가,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 협상바이블 (류재언 지음 / 한스미디어) 

 

류재언 변호사가 쓴 <협상바이블>은 협상을 단순히 이기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상호 이익을 창출하는 중요한 대화 도구로 소개하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협상이 단순한 승리나 패배가 아닌, 상대방의 욕구를 이해하고 그와 함께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책에서 강조하는 협상의 본질은, 바로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기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요구를 열 번 강조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욕구를 한 번 공략하는 것이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이다.”

이는 협상에서 상대를 단순히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킴으로써 더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음을 뜻한다.

협상의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인물은 다니엘 레비, 토트넘 훗스퍼의 회장이다. 그는 초창기에는 협상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유명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협상 방식이 불러온 부정적인 여파를 경험하게 된다. 상대방이 협상 후 그를 싫어하거나 적대감을 품게 된 것이다. 이는 이기기만을 목표로 하는 협상의 한계를 보여준다. 결국, 그의 평판은 나빠지고, 협상 상대자들은 그와 거래를 꺼리게 되었다. 이 사례는 협상이 단순한 승리가 아닌, 장기적인 관계 형성과 신뢰가 중요하다는 점을 잘 설명해준다.

<협상바이블>은 이러한 실패를 피하고, 성공적인 협상을 이끌기 위한 다양한 전략과 기술을 소개한다. 특히 상대방의 첫 제안에 대해 '예스'를 하지 말라는 조언은 흥미롭다. 첫 제안에 쉽게 동의하면, 상대방은 고마워하기보다는 자신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는 후회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고려한 이 같은 조언은 실용적이며 협상 과정에서 유용하다.

책은 단순한 이론적 설명에 그치지 않고, 실제 변호사로서의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협상에서 법적인 안전장치까지도 세심하게 다루고 있다. 이러한 법적 지식은 독자가 협상 과정에서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어떻게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도록 돕는다.
한편,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읽고 협상의 달인이 된다면 협상이 어려워지지 않겠냐는 걱정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협상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면 오히려 더 나은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선의 대안(BATNA,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을 준비하고 이를 바탕으로 창의적이며 서로 만족하는 협상을 찾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협상바이블>은 단순한 협상 기술서가 아닌, 장기적인 관계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윈윈' 협상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협상을 앞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로, 상대의 말 속에 담긴 메시지를 읽고, 함께 승리할 방법을 고민하는 자세를 기르게 될 것이다. (백희성 / 킵(KEAB)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작가)
 

 

■ 추락 (J.M. 쿳시 지음 / 동아일보사) 

 

이 날카로운 도끼 같은 책을 잊고 있었다. 책을 덮으며 ‘아이씨’ 라는 욕인지 감탄사인지가 새어 나온다. 잊고 있었던 쿳시의 문장들. 오래 전 난 그의 책을 읽고 소설가가 되려는 꿈을 접었었다.

어젯밤 이 책을 책장에서 찾아 꺼내 읽고는 온종일 뻐근했고 심장이 미친듯이 두근거렸다. 마치 도끼로 찍어내려 벌어진 상처에 소금을 붓는 것처럼. 

언제부턴가 오십대 남성들을 바라보는 나만의 편견이랄까, 묘한 관찰을 하게 된다. 그 버릇은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 이나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읽고 나서, 아니 그보다 훨씬 전에 읽은 쿳시 <추락>의 주인공 데이비드 루리를 만나고 부터였다.

노년을 맞는 남성이 느끼는 육체와 정신의 사그러짐에 대한 상실감, 패배감. 내가 만난 그들은 이런 것을 어떤 형태로든 보상을 받으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케이프타운 대학의 교수였던 데이비드는 서른살 차이가 넘는 제자와 관계를 가지고, 말 그대로 추락한다. 이후 그가 맞는 삶은 단 한번도 예측할 수 없던 곳으로 그를 이끌어가지만 그래도 그는 초연히 그 삶을 받아들인다.

2003년 노벨상 수상자로 쿳시를 지명하면서 그를 ‘한없이 회의적인 작가’라고 했던 한림원의 말처럼 쿳시의 글에는 남아프리카의 참담한 비극적 식민사를 개인의 삶으로 관통시키면서 무심하도록 차갑고 객관적인 시선이 담겨있다. 

<추락>에서 쿳시는 데이비드라는 인물을 설명하기 위해 긴 묘사를 덧붙이지 않는다. 그가 동료 교수들로 구성된 사건의 심의위원회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당신은 유감으로 생각합니까. 당신이 했던 일을 뉘우칩니까”
“아니오, 나는 이번 경험으로 풍부해졌소”

풍부라니. 풍부란 말이야말로 이럴 때 쓸 수 있는 거였다.  (최여정 / 작가, 9N비평연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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