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K팝 강소기업의 생존법

(MHN 홍동희 선임기자) 124억 원의 영업손실(2024년). 숫자만 보면 K팝 제작사 RBW(알비더블유)는 위기다. 하지만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재무제표의 붉은 잉크 뒤에는 980억 원에 달하는 거대한 '음원 IP' 자산과, 'RBW 2.0'이라는 이름 아래 시작된 치밀한 '미래 전략'이 숨어있다. RBW는 지금, 더 높이 뛰기 위해 몸을 낮추는, 가장 현명한 '체질 개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RBW의 변화는 과감하다. 수익성이 낮은 예능 제작사 '얼반웍스' 지분을 매각하고, 자회사였던 콘텐츠 마케팅 기업 '콘텐츠엑스'를 음반 기획사 '플럭서스'에 흡수 합병하며 경영 효율성을 높였다. 이는 "더 이상 자본력에서 대기업과 경쟁하기보다는 효율성과 차별화로 승부하는 구조 전환이 절실했다"는 김진우 대표의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퍼플키스
퍼플키스

아티스트 라인업 역시 '선택과 집중'의 대상이 되었다. 마마무의 동생 그룹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데뷔 4년 만인 오는 11월 그룹 활동 종료를 발표한 '퍼플키스' 의 사례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예정된 해외 투어와 마지막 앨범 활동을 끝으로 팀을 공식 해체하는 냉정한 결정을 통해, 회사는 리스크를 줄이고 핵심 아티스트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김 대표는 "수익성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를 지속하기는 힘든 상황이 됐다"며, "더이상 지체하는 것은 회사와 아티스트들에게도 희망고문하는 것밖에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대기업과 싸우지 않는다, '틈새'를 노리는 신인 전략

RBW의 영리함은 신인 육성 전략에서 더욱 빛난다. 100억 원 이상이 투입되는 대형 아이돌 제작 전쟁에 직접 뛰어드는 대신, 벤처캐피털(VC)과 협력해 12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신인 '영파씨'에 투자하는 스마트한 모델을 도입했다.

김진우 대표는 "이제 엔터 시장은 자본력 측면에서는 하이브나 SM엔터와 맞붙어 이기기 힘들게 된 것이 사실" 이라며, "메이저를 지향하지만, 대중 아이돌들이 선택하지 않은 힙합과 록 장르를 추구하는 등 틈새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해 나갈 계획" 이라고 밝혔다. 이는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김진우 대표
김진우 대표

RBW의 가장 강력한 '미래 자산'은 바로 '음원 IP'다. 외부 기관이 980억 원으로 평가한 이들의 음원 IP 가치는 현재 시가총액(약 630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 포트폴리오에는 마마무, 오마이걸 등 소속 아티스트의 곡뿐만 아니라, '서쪽하늘'(이승철), '사랑비'(김태우), '텐미닛'(이효리) 등 시대를 풍미한 히트곡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곡들은 방송, 광고, 리메이크 등을 통해 꾸준한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음원 연금'과도 같다. RBW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음원 기반 STO(토큰증권) 발행까지 추진하며 IP 자산화를 가속하고 있다.

 

K팝 '생태계'를 키우는 CEO의 비전

김진우 대표의 행보는 단순히 자사의 생존을 넘어, K팝 산업 생태계 전체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그는 K팝 제작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 '엔터테인먼트사의 25가지 업무 비밀' 을 출간하고, 안양대학교와 협력해 'K콘텐츠 인재 양성' 에 나서는 등, 후배 양성에도 진심이다. 또한, 팬덤 데이터 스타트업 '스페이스오디티' 에 대한 전략적 투자는, 중소 기획사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려는 그의 장기적인 비전을 보여준다.

영파씨

결론적으로, RBW의 현재는 위기 속에서 오히려 자신들의 '진짜 무기'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전략적 재정비' 기간이다. 김진우 대표의 마지막 말처럼, 

"RBW 2.0은 '선택과 집중'을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올해는 RBW가 잘할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메이저 아티스트 육성, 음원 IP의 수익성 확대에 집중해 RBW가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겠다." 

2024년의 적자는 끝이 아닌, 더 강하고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성장통'이었다. 숨겨진 자산과 새로운 전략을 발판 삼아, K팝 '강소기업' RBW의 두 번째 도약은 이미 시작되었다.

 

사진=알비더블유(rb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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