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N 삼산, 권수연 기자) 스스로의 손으로 왕관을 머리에 쓰고 떠난다.

흥국생명은 8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4-25시즌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정관장에 세트스코어 3-2(26-24, 26-24, 24-26, 22-25, 15-13)로 승리했다. 

동시에 배구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구황제'의 라스트댄스가 막을 내렸다.

김연경은 지난 2월 13일, GS칼텍스와의 경기를 마친 후 "성적에 상관없이 올 시즌을 끝으로 현역을 은퇴하겠다"는 말을 전해 배구계와 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올해로 38세, 공격수로서는 황혼기지만 기량은 리그의 그 어떤 현역보다 폭발적이기 때문이었다. 올 시즌 정규리그 기준 585득점(전체 7위, 국내선수 1위), 공격성공률 46.03%(전체 2위), 오픈 성공률 36.43%(전체 5위, 국내선수 1위), 후위 성공률 43.97%(전체 3위) 등의 준수한 성적표를 기록했다. 

김연경은 지난 2005년, 프로 무대에 데뷔하자마자 돌풍을 몰고 다녔다. 데뷔한 해에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 신인왕, 정규리그 MVP, 파이널 MVP를 싹쓸이했다. 

이후 일본, 튀르키예, 중국 리그 등을 누비며 해외 무대에서 선수단을 이끌고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등 세계 여자배구를 좌지우지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4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을 획득했고 2020년 도쿄 올림픽 4강을 끝으로 16년 만에 태극마크를 내려놓았다. 

이후 중국에서 활약하던 김연경은 지난 2022년 6월, 국내로의 깜짝 복귀를 발표했다. 연봉은 당시 여자부 최고 금액인 7억원. 돌아온 김연경은 6위였던 흥국생명을 곧장 2위까지 끌어올렸고 국내 여자배구의 최고 흥행보증수표로 활약했다. 홈,원정을 가리지 않고 구름관중을 몰고 다녔다.

김연경의 은퇴 이야기는 그가 국내에 복귀하면서부터 대두됐다. 당초 국내에서 은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V-리그로 돌아온 그였기 때문이다. 원하던 목표는 하나 뿐. 우승컵과 함께 가장 이상적인 그림으로 무대를 떠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도로공사에 사상 초유의 역스윕패를 당했고, 그는 현역 연장을 선택했다. 그러나 23-24시즌 역시 현대건설에 발목을 잡히며 두 번이나 준우승에 그쳤다. 김연경은 24-25시즌도 코트에서 보내기로 결심했다. 

정규리그 1위 트로피를 든 아본단자 감독-김연경
정규리그 1위 트로피를 든 아본단자 감독-김연경

그 꿈은 3년이 지난 2025년 4월에야 이뤄졌다. 팀 전력을 완전히 갈아엎은 흥국생명은 파죽지세로 질주하며 정규리그 1위를 조기에 확정지었다. 이후 김연경이 가는 경기는 은퇴 투어가 되었고 각 구단이 유니폼 액자 선물로 그를 배웅했다.

22-23, 23-24시즌을 모두 어렵게 보내고 다시 한번 올라온 꼭대기였다. 이번에는 정말로 김연경의 현역 마지막 무대였기에 많은 눈이 쏠렸다. 

그리고 1, 2차전을 내리 잡았다. 생각보다 쉬운 우승길이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정관장의 투지가 대단히 거셌다. 연이은 풀세트 끝 3, 4차전을 뒤집히며 2년 전 역스윕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5차전은 그야말로 사활을 건 대결이 펼쳐졌다. 

13년 만에 챔프전에 올라온 상대 정관장은 '악역'을 자처했지만 실로 훌륭한 적이자 또 하나의 주역이었다. 대부분이 부상 선수들인 상황에서 어렵사리 고비를 넘었다. 챔프전을 통틀어 내내 투혼을 말했고, 또 보여줬다. 

5차전 1, 2세트를 어렵게 역전 듀스로 이긴 흥국생명은 3, 4차전을 다시 정관장에 내줬다. 운명은 5세트로 흘러갔다. 그리고 12-12 동점에서 김연경이 메가의 매서운 공격을 몸을 던져 걷어낸 것이 발판이 됐다. 여기에 투트쿠가 마지막 퀵오픈 두 방을 처리하며 마침내 팀 모두가 염원하던 통합우승에 발을 디뎠다.

김연경은 원하는대로 최정상에서 가장 최고의 모습으로 물러나게 됐다.

경기 후 김연경은 은퇴에 대해 "오늘 끝났던 모습이 제가 원했던 모습이다"라며 "많은 분들이 '아직 잘하고 정상에 있는데 왜 가냐'고 말했지만, 이게 제가 상상했던 은퇴 모습이다. 우승컵을 들고 별 하나를 더 달고 은퇴하는게 제가 원했던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내일도 대전으로 이동하던지, 인천에서 한 경기를 더 뛸 것 같다"며 은퇴가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고 전한 그는 "은퇴하면서는 오늘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제 그는 '선수 김연경'을 벗어나 '인간 김연경'으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한다. 현재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당분간 긴 휴식과 함께 재단 운영에 초점을 맞출 전망이다. 재단은 오는 5월 17일과 18일 양일에 걸쳐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KYK 인비테이셔널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한편 김연경은 은퇴 경기에서 34득점(공격성공률 42.62%), 블로킹 7개, 서브득점 1개를 기록했다. 챔피언결정전을 통틀어서는 누적 133득점, 오픈 성공률 40.78%(1위), 공격성공률 46.31%(1위) 등의 성적을 남기고 떠난다.

 

사진= 연합뉴스, MHN 이지숙 기자,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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