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도는 97년 8월 전주에서 4개국 초청대회를 열었다.  

97전주-무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치르고 난 뒤 생긴 전주실내빙상장에서였다. 대회에는 캐나다 캘거리대학팀, 체코 클라루피, 일본 후루가와전공, 그리고 만도가 참가했다.

당시 만도는 현 국가대표 감독을 맡고 있는 백지선(당시 미국 마이너리그팀 소속)과 석용주(재미교포), 심규인을 초청해 뛰게 했다. 한 대회에만 뛰는 것이었고, 항공료와 약간의 초청료를 지급했다.

대회 결과는 캐나다가 우승했다. 만도는 1승2패를 기록한 것으로 기억된다. 백지선은 완전한 수비형 디펜스였다. 확실히 최고 무대인 NHL에서 뛰었던 경력이 말해주듯 수비지역에서의 경기운영이 완벽했다. 또 선수들의 모범이 됐다. 몸관리는 말할 것도 없었고 사생활까지도 정말 달랐다. 몸관리는 그야말로 프로였다.

라커룸에 장비를 정렬해 놓는 것 조차 군대 내무반의 군장을 꾸려놓은 것처럼 반듯하게 정리를 했다. 개인운동장비까지도 늘 본인 스스로 갖고 다녔다.

한라 선수들도 그런 백지선을 형이라고 부르면서 잘 따랐다. 백지선으로부터 기량 뿐만 아니라 생활태도까지 배웠던 것이다. 최고리그의 프로가 하는 것을 직접 보니 저절로 따라 하는 것 같았다. 전에만 해도 술도 먹고 담배도 피웠던 선수들이 체력관리를 하는 변화를 느꼈다. 한국 아이스하키가 조금씩 달라지는 전환점이었다.  

97년 전주국제대회에서 자신감을 얻은 우리는 99년에는 강릉에서 또 한차례 대회를 열었다. 이번에는 한라, 현대, 동원 세 팀이 해외교포를 각각 한명씩 초청해 용병으로 뛰게 하는 대회였다.  언론에서는 '빙판의 삼국지'라고 했다. 만도에서 한라로 이름을 바꾼 우리는 백지선을, 현대는 박용수, 동원은 이용민을 불러 뛰게 했다.

그때는 한라가 나이어린 선수였던 이호정, 박성민 등의 깜짝 활약으로 우승했다. 그 여파로 코리아리그 때에는 강릉의 소년, 소녀 팬들이 서울까지 응원을 왔다. 그래서 한라는 강릉으로 버스를 보내는 팬서비스를 하기도 했다. 드디어 아이스하키도 인기종목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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