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호수 위를 질주하던 고려대 아이스하키부

고대는 산정호수가 겨울 훈련캠프였다. 아니 국내 모든 아이스하키팀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지옥같은 생활이었다. 날씨가 춥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밤에는 꼼짝도 못했다. 목욕시설이 없으니 아침이면 세수도 하지 못했고 겨우 양치만 할 수 있었다. 

화장실도 옛날 재래식이었다. 아침 일찍 화장실에 가면 전날 본 변이 쌓여 고드름처럼 솟아 있어 어떤 때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배변을 해야 할 정도였다.

훈련은 400m링크에서 했다. 각 팀들이 구역을 나눠 만들었다. 오전 훈련은 400m를 좌로 30바퀴, 우로 30바퀴 도는 것이 기본이었다. 우리가 빙상부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그 때의 훈련은 엉터리였다. 하키선수가 스틱을 잡고 훈련을 해야 하는데 오전에는 스틱을 아예 잡지 않았다. 100m, 200m 대시 연습만 했기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나는 스케이팅이 아주 빨랐다. 선두에 서서 링크를 30바퀴 돌 때 뒤에 쳐진 선배들이 눈치를 줬다. 그러면 장득봉이 내 유니폼을 붙잡아 빨리 나가지 못하게 했다. 김만영 코치가 주로 우리를 가르쳤는데 선두와 한바퀴 차이가 나는 선수는 기압을 줬다. 몇바퀴 더 돌게 했으니 선배들은 나를 빨리 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우리는 오후 훈련 때가 돼서야 스틱을 사용했다. 

오후에는 산정호수에 '김일성 바람'이라고 불렀던 엄청난 바람이 불었다. 하도 고약해서 우리가 붙인 이름이었다. 김만영코치는 일부러 맞바람을 맞도록 반대로 스케이트를 타게 했다.  맞바람에 스케이트를 타는 것은 두배의 고통이었다. 

그렇게 한달을 훈련하고 나면 선수들의 실력이 확 바뀌었다. 얼굴도 아주 까맣게 탔다. 얼음위에서 태운 얼굴은 여름 해변가에서 태운 것과 다르다. 똑같이 색이 꺼멓게 변하지만 유난히 반짝 반짝 빛이 난다. 그래서 겨울에 태운 살갗은 더 예쁘다.

어디 가서 "너 왜 이렇게 까맣게 됐니?"라고 물으면 "스키장 가서 놀다왔다"고 한 적도 있다. 일주일 동안 고생을 하고 나면 하루 휴가를 줬다. 그 때 목욕탕에 가서 깨끗이 씻고 당구도 치고 그랬다. 산정호수의 추억은 내게 고통과 운천 시내에 나가서 술도 한잔 먹던 재미로 버틸 수 있었다. 그게 정신적인 피로를 풀 수 있게 했던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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