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후반 중앙대 아이스하키부. 넥타이 차림의 신사가 최영덕 감독

내가 경희대에 납치된 상황에서 광성고는 마지막 대회를 치렀다.

전국체전이었다. 그 대회에서 광성은 결승에서 중동고에 패해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내가 뛰지 못했지만 광성으로서는 시즌 첫 패배였다. 당시 중동고 골리였던 친구 송광현(경희대졸)으로부터 광성의 패전 소식을 들었을 때 피가 끓어 올랐다. 경희대 선배들이 원망스러웠다. 

경희대 외에 중앙대학도 뒤늦게 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나섰다. 고3 12월 경이었다. 중앙대 아이스하키팀은 지금은 해체돼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열정적인 팀이었다.

중앙대는 나와 내 동기 이용헌(작고)을 잡으려고 했다. 먼저 나와 친했던 이용헌을 납치하려 했다. 용헌이가 눈치를 채고 택시 유리창을 깨고 탈출했다. 택시 문짝을 발로 차고 도망쳤다는 이야기였다.

그 때 중앙대 감독은 최영덕선생이셨다. 김정길 선배는 성동고출신이었는데 스카우트 담당이었다. 김선배는 이용헌을 잡는데 실패하고나서 다시 나를 쫒았다. 김정길 선배는 내가 당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동대문링크장 앞에서 만나 당구를 치자고 했다. 나는 그때 이미 300당구, 그분은 400이었다.

내기를 해서 내가 이겼다. 서로 이기는 사람이 해달라는대로 해주는 내기였다. 분명히 나보다 잘치는 당구였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서 나는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해놓고는 따라가는 척 하다가 도망을 쳤다. 그 후 경희대에 소문이 나 결국 중앙대가 먼저 나를 포기했다.

중앙대는 당시 멤버가 괜찮았다. 언제 창단됐는지는 모르지만 64년경 부터는 우수선수를 뽑기 위해 스카우트를 했었다. 그리고 60년대 후반부터 활기를 띄었다. 중앙대는 기량이 좋은 선수가 많았지만 최영덕교수가 감독을 하면서 훈련을 많이 시키지 못했다. 더구나 이영수라는 필드하키 코치가 선수들을 가르쳤다. 그분은 스케이트를 탈 줄 몰라 얼음판에는 들어오지 못했다. 그래서 선수들이 스스로 훈련을 했다.

필드하키코치가 아이스하키 선수들을 지도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었으니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었다. 

그러던 중앙대는 77년부터 스카우트를 하지 않았고 결국 해체됐다. 윤수철, 장우정 등이 중앙대 출신으로 국가대표를 지냈다. 중앙대의 해체 이유는 스카우트 과정에서의 잡음 때문이었다.

중앙대-연세대 경기. 맨 우측이 장우정
중앙대-연세대 경기. 맨 우측이 장우정

최근 중앙대가 팀창단을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박용성 전 대한체육회장께서 중앙대 이사장이시니 평창올림픽을 생각한다면 재창단이 되어 대학아이스하키를 활성화 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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