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스카우트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선수 본인의 신병만 확보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즉 어느 학교에 가서 입학 시험을 치르느냐가 관건이요, 스카우트의 최종목표였다. 그래서 어느 종목이든 잘하는 선수를 상대로 납치사건이 종종 발생했다. 아이스하키에서도 납치극이 벌어질 정도였다면 믿을 수 있을까?
나는 광성고 3학년 초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가장 강하게 나를 원한 학교는 고려대와 경희대였다. 전력은 경희대가 강했지만 고대와 연대는 정기전에 대비해 1964년부터 스카우트를 시작했다. 전에는 입학시험을 치른 학생들을 대상으로만 팀을 운영했다.
나를 두고 쟁탈전을 선점한 것은 고려대였다. 9월 쯤이었다. 당시 고려대는 이종환 선생님이 감독이었다. 이감독님은 어느 은행인가 실업축구팀 감독도 겸하셨다. 축구계에서는 '스카우트의 귀재'로 불렸다. 스카우트 싸움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는 분이였다. 이감독님은 나보고 당분간 어디에 좀 가 있으라고 하셨다. 다른 대학과 내가 아예 접촉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나도 고려대가 맘에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10월 쯤 나는 대구로 갔다. 당시 이종환 선생님의 친구분이 대구 OSI 수사대장이는데 그분이 근무하던 대구 동천비행장으로 갔다. 나와 함께 고려대에 입학했던 광성고 동기생 이용헌(작고)과 함께였다. 우리 둘은 공군기지 내의 숙소에서 근 한달 간 먹고 자고 놀기만 했다.
우리는 목욕탕을 갈 때도 공군 헌병대 차를 타고 갔다. 비상등을 켜고 질주를 할 때면 신바람이 절로 났다. 영내에서는 빈둥빈둥 하는 일 없이 지냈지만 식사도 장교식당에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 외식도 시켜줬는데 그 때마다 꼭 헌병들이 우리를 데리고 다녔다.
이종환감독님이 스카우트의 귀재였던 이유는 스카우트 하려는 선수를 대구 공군 헌병대에 꽁꽁 숨겨 놓는 것이었으니 누구도 그분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생활을 한참 하자니 지루했다. 그래서 심심하다고 푸념을 했더니 영외의 한 공군 상사 집으로 보내줬다. 그 집에서 한동안 지내다가 우리 둘은 도망을 쳤다. 고려대를 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유로운 생활이 그리웠던 것이다. 더구나 그 공군상사는 의처증이 있었다. 부인이 아주 미인이었다. 가끔 상사는 술을 먹고 귀가한 날이면 심하게 다퉜고 심지어는 때리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나가자"며 의기투합했다.
당시 우리를 관리했던 담당은 김만영, 박병권 선배였다. 군상사 집으로 갈 때 두 분이 우리를 데려다줬는데 도망을 쳤으니 어찌됐겠는가. 우리가 대구를 뜨던 날 마침 김선배와 박선배 두 분이 우리가 잘 있나 지켜보기 위해 대구에 왔다. 나중에 두 분께 욕만 실컷 먹었다.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면 얻어 터질 일이었지만 그 때만해도 나와 이용헌은 귀하신 몸이었기 때문에 뒷 탈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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