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사도' 이미지와 30년 전 과오 사이… 대중은 혼란스럽다

(MHN 홍동희 선임기자) "치칙... 치지직... 거기도 그럽니까? 돈 있고 빽 있으면, 무슨 짓을 해도 잘 먹고 잘 사나요?"

2016년, 드라마 '시그널' 속 이재한 형사는 낡은 무전기를 붙들고 이렇게 울분을 토했다. 정의가 실종된 시대를 향한 그의 절규는 시청자의 가슴을 뜨겁게 했고, 배우 조진웅은 그 순간부터 우리가 가장 신뢰하는 '정의의 얼굴'이 되었다. 우직하고 타협하지 않는 그 '진짜 어른'의 모습은 그를 충무로의 대체 불가한 배우로 만들었다.

하지만 2025년 12월, 그 견고했던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무전기 너머 들려온 것은 정의로운 형사의 목소리가 아니라, 30년 전 방황하던 한 소년의 거친 숨소리였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그의 고교 시절 과거는 대중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소속사는 "성범죄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질풍노도의 시기에 겪었던 과오가 소년보호처분이라는 무거운 기록으로 남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지금 대중이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깊은 '혼란'에 가깝다. 물론 실망감을 표출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조진웅을 옹호하거나, 사태를 조금 더 신중하게 바라보자는 시선도 분명 존재한다.

일부 동료 연예인들과 팬덤, 그리고 남성 중심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30년 전의 일이다. 법적 처벌과 교화가 끝난 사안을 두고 이제 와서 밥줄을 끊는 것은 가혹하다"는 동정론을 펴기도 한다. 가수 A씨는 SNS에 "누가 그리 완벽한가, 세상이 너무 잔인하다"며 은퇴 압박을 비판했고, 일각에서는 이를 '현대판 마녀사냥' 혹은 '디지털 인민재판'이라 부르며 경계한다. 

이들의 논리는 '법치주의'에 기반한다. 대한민국 소년법은 미성숙한 소년의 범죄에 대해 처벌보다는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을 우선시하며, 그 처분 기록이 장래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소년법 제32조 제6항). 즉, 법적으로 조진웅은 이미 죗값을 치렀고, 깨끗한 신분으로 사회에 복귀할 권리를 보장받았다. 헐리우드의 마크 월버그가 10대 시절 인종차별 폭행과 살인미수 혐의로 수감되었음에도 톱스타로 활동하는 것처럼,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의 재능과 분리해야 한다는 '예술 지상주의'적 시각도 힘을 얻는다.

하지만 대중의 법 감정, 이른바 '국민 정서법'은 이러한 논리를 단호히 거부한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그가 '과거에 죄를 지었다'는 사실보다, 그가 '자신의 과거와 정반대되는 이미지를 팔아 부와 명예를 축적했다'는 기만행위에 있기 때문이다. 강도나 성범죄와 같은 타인의 인격을 파괴하는 중범죄는 '철없는 시절의 객기'로 포장될 수 없다. 대중은 묻는다. "피해자의 시간은 1994년에 멈춰 있는데, 가해자는 어떻게 정의의 사도가 되어 스크린을 누빌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이 차가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조진웅이 가진 특유의 '이미지' 때문이다. 그가 주로 연기해 온 배역들은 정의롭고, 인간미 넘치며, 악에 맞서 싸우는 인물들이었다. 대중은 그 캐릭터와 실제 배우를 동일시하며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그가 과거에 실수를 했다는 사실보다, 그 실수와 정반대되는 이미지를 통해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는 '괴리감'에 있다. "피해자의 시간은 멈춰 있는데, 가해자는 어떻게 정의의 사도가 되어 스크린을 누빌 수 있는가"라는 물음 앞에, "연기는 연기일 뿐"이라는 논리는 힘을 잃기 쉽다. 이는 배우 개인의 도덕성을 넘어, 대중문화가 파는 '환상(Fantasy)'의 유효기간이 어디까지인가를 묻는 묵직한 질문이기도 하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현실적인 피해다. 10년을 기다려온 드라마 '시그널' 시즌2는 제작 중단이라는 초유의 위기를 맞았다. 배우 한 명의 과거사가 수백 명의 스태프와 동료 배우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구조적 취약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조진웅 측의 대응도 아쉬움이 남는다. 의혹이 불거졌을 때 조금 더 솔직하고 진정성 있게 과거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어땠을까. "확인 중"이라는 말 뒤에 숨거나 법리적 해석만 내세우기엔, 대중이 그에게 걸었던 기대와 애정이 너무 컸다.

무전기는 꺼졌다. 그리고 대중이 보냈던 신뢰의 신호도 잠시 끊겼다. 법은 그를 용서했을지 몰라도, 돌아선 대중의 마음을 되돌리는 건 법전의 논리로는 불가능하다. "과거는 바꿀 수 있다"던 드라마 속 대사는 판타지였을 뿐, 현실의 과거는 결코 지워지지 않은 채 현재를 붙잡는다.

조진웅 사태는 우리에게 뼈아픈 고민을 던진다. 한 인간의 30년 전 과오는 언제까지 현재의 발목을 잡아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스크린 속 배우의 얼굴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정답 없는 질문 속에, 2025년의 겨울은 유난히 춥게 느껴진다.

 

사진=MHN DB, 블루필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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