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강민ⓒMHN스포츠 정혜민PD
사진=강민ⓒMHN스포츠 정혜민PD

[MHN스포츠 권성준 기자] 강민을 대표하는 별명은 '몽상가'이다.

'몽상가'는 강민이 할루시네이션 리콜, 커세어-리버 전략 등 이론상으로만 존재했던 전략을 실전에서 완벽하게 사용해 붙은 별명이다.

현역 시절 강민은 '3대 프로토스' 중 한 명으로 올드 세대 최고의 프로토스였다. 양대리그 로열 로더, 옐로 로더 달성, 양대리그 2회 우승, 2회 준우승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전설이 돼버린 전략적인 플레이에서 현재까지 쓰이는 프로토스의 정석 빌드까지 그야말로 프로토스의 아버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업적을 남겼다.

스타크래프트, 리그 오브 레전드 해설을 건너 지금은 개인 방송을 통해 활약하고 있는 강민, 강민을 만나서 영광의 그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최근 근황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유튜브 개인 방송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하루 쉬고 방송을 하니까 매일 방송을 한다고 봐야죠. 유튜버라고 해야 될 것 같아요.

- 어려운 환경에서 프로게이머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로게이머를 시작하게 된 구체적인 계기는 무엇인가요?

원래는 게임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했어요. 좀 일찍 시작했었는데 중간에 한 2년 정도 (게임을) 안 했거든요. 그러다 아버지께서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좀 안되고 이런 게 좀 겹치는 시기가 있었어요. 집도 좀 많이 힘들어서 제가 아르바이트도 하고 그랬어요.

근데 아무래도 고등학생이 아르바이트해 봐야 큰돈을 벌기가 힘들잖아요. 아직 학생이니까. 그래서 스타를 다시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상금을 받으면 그때 몇 천만 원 됐으니까 막연하게 '우승할 실력은 안 돼도 내가 스타를 잘하니까 상금을 타보자' 처음에는 그 생각으로 해보자고 직진했던 것 같아요.

- 현역 시절 '3대 토스'로 꼽히며 엄청난 성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자신만의 특별함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남들이랑 똑같이 하는 걸 거부했던 것 같아요. 프로토스는 저만 있는 건 아니고 굉장히 많은 선수들이 있고 엄청 유명한 선수들도 많이 있었어요. 저보다 먼저 우승을 해서 일찍 유명세를 떨치던 선수들이 많았어요. 그런 선수들이랑 나는 좀 다르게 가보자는 마인드로 했던 거 같아요.

같은 빌드를 쓰기는 싫었고 좀 색다른 그리고 나만의 빌드를... 이를테면 원 게이트나 더블 넥서스나 이런 빌드를 했었죠. 단순히 그냥 '무작정 다르게 하자.'는 아니었어요. 제가 하는 원 게이트나 더블 넥서스가 결국 나중에는 정석이 되고 일반적인 플레이가 될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 생각들이 겹치다 보니까 남들과는 다른, 빌드의 차별화를 뒀던 거 같아요.

그런 게 사실 초반에는 굉장히 힘들었어요. 오랫동안 힘들었고... 제가 어느 팀에 들어갔을 때도 그 팀, 그 당시에는 사장님이라고 불렀거든요. 당시 엔터테인먼트라고 해야 되나? 그런 명칭으로 불리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프로게이머를 데리고 있는 조직이었고 거기에 들어갔는데 절대로 그런 식으로 플레이하면 안 될 거라고 직접적으로 쓴소리 들으면서 저만의 빌드를 발전시켰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다 보니까 또 운 좋게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사진=강민ⓒMHN스포츠 정혜민PD
사진=강민ⓒMHN스포츠 정혜민PD

- 현역 시절 명경기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강민이 꼽는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무엇인가요?

정말 많이 받는 질문이고 개인방송하면서도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인 것 같아요. 할루시네이션 리콜이라고 이병민 선수하고 했던 경기가 있는데 그 경기가 임팩트가 강하고 짧고 굵은 경기였어요.

기억나는 경기는 많아요. 이윤열이랑 했던 '유보트 대첩'이라고 불렸던 경기도 기억나고 굉장히 많이 있지만 하나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페럴렐 라인즈'에서 했던 이병민과의 그 경기, 할루시네이션 리콜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 전략적인 플레이를 많이 구사해서 '몽상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들과 다르게 하고 싶다고 해서 그게 항상 되지는 않는데 그러한 플레이 스타일을 계속 유지하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만의 무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기존에 우승을 했던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 배울게 많아요. 그 빌드를 똑같이 따라 하면 승률이 좋을 거예요. 왜냐면 이미 우승을 했던 사람이고 검증이 된 빌드니까요. 근데 그게 저만의 독특함, 치명적 무기라고 생각은 안 들었어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남들과 전혀 다른 플레이 스타일을 추구했고 그것이 제 무기라고 생각을 했어요.

프로게이머들이 굉장히 많은 연습을 하지만 저만의 무기를 갖고 있으면 분명히 상대하는 선수는 연습 때 절대로 경험해 보지 못한 빌드를 저한테 당하는 거죠. 그래서 대처를 아무리 잘하려 해도 쉽지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것이 곧 저의 무기라고 생각하고 연마했어요.

그래서 저는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빌드들에 대해서는 연습을 많이 하고 내 빌드를 (일반적인) 빌드와 붙었을 때 오히려 상대방이 더 당황하는... 저는 상대방의 플레이에 대처를 미리 다 준비해 온 반면 상대방은 "연습을 그렇게 많이 했지만 이런 스타일의 프로토스는 연습을 한 번도 못해봤는데...". 그러면서 (빌드에) 당해요. '그것이 곧 내 무기고 내 강점이다'라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남들이 생각하지 않았던 빌드라든지 캐논 러시라든지 이런 걸 많이 연구했던 것 같아요.

- 강민의 가장 인상적인 기록 중 하나가 Stout MSL 우승, Mycube배 스타리그 준우승으로 유일하게 양대리그 로열 로드와 옐로 로드를 모두 달성한 선수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에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요?

그렇죠. 근데 아마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또 그런 자신감 없으면 안 되고요.

근데 저는 약간 특이한 케이스였어요. 독특한 빌드를 하면서 우여곡절이 너무 길었어요. 예선도 정말 오래 떨어졌어요. 2~3년 이상을 떨어지면서 성과를 내려면, 뭔가를 보여주려면 기본적으로 본선을 올라가야 해요.

근데 항상 예선 끝자락, 문턱에서 떨어지고 이게 오랫동안 반복이 됐어요. 그 당시에 생각은 딱 하나였어요. '본선만 올라가자.', '본선만 올라간다면 우승할 수 있다.' 이 생각만 가지고 했어요. '어떻게든 본선 한 번만 올라가자.', '16강만 올라가자. 그러면 나는 올라가자마자 우승할 수 있다.' 몇 년 동안 예선을 떨어지면서도 이 마인드로만 했어요.

그렇게 긍정적으로 스스로 저만의 자신감, 주문을 외워보니까 어떻게 운이 따라줬는지 첫 본선에 올라갔을 때 양대리그 결승에 다 올라갔어요. 그때 '본선만 딱 올라가자, 무조건 우승할 수 있다.' 이 생각을 오랫동안 해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해요.

사진=MBC 게임 제공
사진=MBC 게임 제공

- 방금 언급한 이병민 선수와의 할루시네이션 리콜 경기가 2004년 Spris MSL 패자전 결승 2경기입니다. 이 빌드는 미리 준비해온 빌드였나요? 아니면 즉흥적으로 떠올린 빌드인가요?

그 빌드는... 일단 '페럴렐 라인즈'라는 맵에서 프로토스가 테란을 이기기가 사실상 힘들어요. 맵의 유불리가 테란 쪽으로 많이 좀 기울어 있어서 같은 실력이라면 너무 이기기 힘들었어요. 필살기가 필요했는데 제가 그 맵에서 처음 하는 선수도 아니었고 기존에 나와있던 빌드들도 있었어요. 그런 점은 상대 선수가 다 분석하고 나왔을 거예요. 그래서 필살기 중의 필살기를 만들기가 어려웠어요.

일단 즉흥적으로 할 수는 없는 빌드였어요. 최적화가 안 돼있으면 쓰기가 어렵거든요. 섬 맵이고 가스는 두 덩이밖에 없는데 가스가 많이 필요한 유닛들 하이템플러라던가 아비터를 뽑거든요. 그리고 업그레이드할 때도 가스가 필요해요. 그래서 최적화 빌드를 연구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쓸 수가 없는 빌드에요.

그래서 준비 과정이 다른 어떤 빌드보다 오래 걸렸던 경기였어요. 그때 KT 소속이었고 빌드를 준비하면서 항상 날을 샜어요. 몇 주일을 날을 새면서 마치 도자기를 만들듯이 계속 다듬고 다듬었어요.

어떤 큰 빌드를 하나 정하면, 이를테면 '아비터로 리콜을 하자.' 하면 아비터를 뽑아 놓고 어떻게 리콜을 할 건지 계속 빌드를 깎고 다듬는 단계를 거쳤어요. 해가 뜰 때까지 몇 주 동안 연습했던 기억이 나요. 당시 프로토스 유저였던 정석이랑 상의하면서 "이런 건 어떻게 괜찮냐?" 하면서... 당시 프로토스 유저들이 저 말고 또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굉장히 공들여서 만든 빌드라 기억이 많이 나는 경기기도 해요.

사진=OGN 제공
사진=OGN 제공

- 또 다른 '몽상가'의 명경기로 2006년 SKY 프로리그 전기리그 안석열 선수와의 경기가 있습니다. 커세어-리버 전략의 대표적인 경기로 꼽히는데 이 전략은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나요?

그 전략은 기본적인 마인드라고 해야 되나? 기본적인 포맷은 '상대를 어떠한 특출난, 화려한 플레이로 이기자.'가 아니라 '무조건 지지 않는다.'에서 시작합니다.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 공격을 하든 어떤 방식으로 운영을 하든 상대가 뭘 하든 무조건 안 진다는 게 바탕에 깔려있는 빌드에요.

설령 1시간, 2시간, 3시간 게임을 해도 지지는 않아요. 계속 버틸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빌드가 커세어-리버에요. 처음 그 빌드를 시작할 때 '나는 네가 뭘 해도 무조건 너한텐 안 져.' 이런 마인드로 시작을 하지만 상대가 계속 저한테 공격을 와서 막히면 결국 저한테 역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이길 수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반대로) 공격 갔을 때 빌드 자체가 되게 화려해요. 워낙 화려하기 때문에 그런 빌드가 탄생했어요.

안석열이랑 경기했던 그때는 이미 커세어-리버가 이미 많이 알려진 시기고 이전에도 이미 많이 사용을 했어요. 기본적으로 절대 지지 않기 위해서 창안한 빌드였어요. '적어도 무승부다. 절대 패배는 안 하는 빌드다.'라고 생각을 했던 빌드였어요.

- '유보트 대첩'이라고 불리는 2004 센게임 MSL 패자조 준결승 이윤열 선수와의 경기가 손꼽히는 명경기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 2스타 레이스 빌드에 당해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었는데 어떤 생각으로 게임을 했었나요?

'유보트'라는 맵도 이병민이랑 했던 할루시네이션 리콜 맵 '패럴렐 라인즈'처럼 테란을 이기기가 진짜 힘든 맵이에요. 너무 힘들어서 동실력이면 '아 이거 어떻게 이기냐?'. '동실력이면 못 이기는데...' 그런 맵이었어요. 그래도 대회니까 빌드를 잘 준비해 왔지만 윤열이가 더 좋은 빌드를 들고 와서 제가 많이 불리해졌어요. 본진이 날아가고 이사를 가고... 거의 진 거나 다름없었어요.

그때 집중력을 잃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 기억에는 누가 봐도 경기가 진 건데 '아직 경기 안 졌다.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이런 집중력을 오히려 경기 끝나기 전까지 끌어올렸고 반대로 윤열이가 약간은 방심을 했었을 수도 있어요. 누가 봐도 이긴 상황이었기 때문에... 방심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방심을) 할 수 있을만한 여지는 있었던 경기였어요.

사실 저도 그 게임을 많이 봤어요. 저도 신기하긴 해요. 경기를 다시 보면서 '도대체 이걸 어떻게 이겼을까? 도저히 이길 수가 없는 경기였는데...', '어떻게 이걸 이겼지? 윤열이를 상대로.' 윤열이라는 당대 최강, 거의 세계 최강 이런 평가를 받았던 선수랑 그렇게 게임해서 이거를 어떻게 이겼는지... 지금 봐도 아마 어떻게 이겼는지 전혀 모르겠다면서 볼 거예요. 윤열이가 또 희생양이 되어 주면서 정말 명경기가 탄생했어요. 근데 그게 다전제였는데 결국에는 제가 지긴 했어요. 결국 2:1로 지기는 했죠.

☞2편에서 계속됩니다.

관련기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