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플키스의 갑작스런 해체가 남긴 질문들 [홍동희의 시선]
실력파 걸그룹의 쓸쓸한 퇴장 RBW의 석연치 않은 작별 방식
(MHN 홍동희 선임기자) 불과 3주 전, 그들은 신곡을 발표했다. 그리고 앞으로 영어 앨범 발매와 미주 투어라는 가장 찬란한 무대들이 예고되어 있었다. 그런데 바로 오늘(4일), 걸그룹 퍼플키스는 돌연 11월 활동 종료를 알렸다. 4년간 독보적인 콘셉트와 실력으로 K팝 씬에 자신들의 색을 각인시켜 온 그룹의 갑작스러운 퇴장이다. 소속사 RBW(알비더블유)는 '멤버들의 꿈을 존중한 선택'이라고 설명했지만, 이 석연치 않은 작별 방식은 팬들과 업계에 더 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중소 기획사의 한계인가, 시장의 과포화 탓인가
퍼플키스의 해체를 두고 많은 이들은 '중소 기획사의 한계'와 '걸그룹 시장의 과포화'를 동시에 거론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매년 수십, 수백 팀의 아이돌이 쏟아져 나오는 K팝 시장은 그야말로 정글이다. '빅4'가 아닌 이상, 꾸준한 미디어 노출과 팬덤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일이 아닐 수 없다. 퍼플키스처럼 독창적인 콘셉트와 실력을 갖춘 그룹조차 '톱티어'로 안착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은, 이 시장이 얼마나 무자비한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시장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팬덤 '플로리(PLORY)' 사이에서는 소속사 RBW의 '지속적인 홍보 전략 부재'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좋은 앨범을 내놓고도 그 화제성을 이어갈 후속 콘텐츠나 프로모션이 부족했고, 활동과 공백기 사이의 간극이 너무 길었다는 지적이다. 이는 '마마무'라는 성공 신화를 쓴 중견 기획사조차, 한번 구축된 시스템에 안주하여 시장의 빠른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퍼플키스의 해체는, 시장의 냉혹함과 소속사의 안일함이 만들어낸 합작품에 가깝다.
3개월의 유예, 과연 '배려'일까?
이번 해체 발표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부분은 '화려한 작별 일정'이다. 소속사는 그룹 활동 종료를 알리면서도, 미주 투어와 마지막 콘서트까지 모든 예정된 활동을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3개월이라는 유예 기간. 이것은 과연 팬들과 멤버들을 위한 마지막 '배려'일까?
이는 팬들과 멤버들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안겨준다. 한편으로는 예정된 무대를 통해 마지막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끝을 알고 있는 이별을 향해 함께 걸어가야 하는 애틋하고도 힘든 여정이다. '유종의 미'라는 아름다운 명분 뒤에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와 더불어, 마지막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려는 소속사의 현실적인 고민이 함께 담겨 있을 것이다. 이는 팬들과의 아름다운 추억 만들기가 아닌, 길고 슬픈 '장례 절차'는 아닐까.
결국 퍼플키스의 이야기는 K팝 산업 생태계에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실력'과 '독창성'을 갖춘 아티스트가 팬들의 사랑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길을 걷기 위해, 우리에게는 무엇이 더 필요한가. 이들의 마지막 무대가, 그 질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사진=RB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