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이후의 상상력...다와다 요코 '헌등사' (오늘의 책)

오늘 주목할 만한 외국 소설 다와다 요코, '헌등사'

2025-08-04     이나영 인턴기자

(MHN 이나영 인턴기자) 오래도록 주목할 만한 외국 소설로 다와다 요코의 소설집 '헌등사'를 소개한다.

1960년 일본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석사와 박사를 독일에서 취득하며 일본어와 독일어 두 언어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소설가 다와다 요코. 그 특수성으로 인해 이중 언어 작가로 불리우며, 언어와 경계에 관한 민감한 촉수는 다와다 요코만의 초문화적이고 탈인간중심주의적인 문제의식과 실험적 글쓰기의 근간이다.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수상자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는 그는 독일에서 레싱문학상, 괴테문학상, 샤미소상을, 일본에서 군조신인문학상, 이즈미교카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동시대의 거장.

'헌등사'는 번역 부문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다와다 요코의 소설집. 2011년 3월 11일의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목격한 그의 재난 문학이며 현실과 비현실의 시공간을 태연하게 오가며 실험적 글쓰기를 이어온 그가 에언적으로 성찰한 디스토피아의 미래다.

미국 도서관 협회 북리스트가 “죽음을 새로운 시각으로 관조하는 아름다운 디스토피아 소설. 다와다 요코의 기발한 스타일과, 사실로부터 추상으로 도약하는 비상한 능력은 파괴로 치닫는 인류를 질책하는 한편, 미지의 희망으로 가득한 미래를 전망한다.”는 평으로, 커커스 리뷰가 “초현실주의적 글쓰기를 선보이는 다와다 요코는 대재난 이후 ‘디스토피아 일본’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상상함으로써 지금 이 순간에 놀라울 정도로 절실한 명상을 제공한다."는 수식으로 극찬한 다와다 요코의 대표작. 국내에서는 2024년 출간되어 베스트 셀러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헌등사|다와다 요코|유라주 옮김|민음사

표제작 '헌등사'에서 다와다 요코는 대지진과 치명적인 원전 사고 이후 고립된 일본의 근미래를 상상해보인다. 자연은 오염되었고 정부는 민영화되었으며 쇄국 정책으로 외국어가 쓰이지 않는다. 수출입이 제한되어 식료품이 부족하며 전자기기도, 인터넷도 없다. 사고 이전에 태어난 노인 세대는 죽을 수 없는 몸이지만,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는 충분히 먹지도, 걷지도 못한 채 점차로 쇠약해져가는 극심한 고령 사회. ▶"외국 도시의 이름을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기묘한 법률"이 있고 ▶"60대 젊은이가 정년퇴직하는 시대가 있었던 것이 신기하"게 여겨지는 세계.

초등학생 무메이는 100세가 넘은 증조 할아버지 요시로와 함께 산다. 병약한 젊은이는 먹을거리를 가져다주고, 일을 하는 노인에 의지해 살아간다. 제목 '헌등사'는 본래 절에서 신령이나 부처에게 등을 바치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소설에서는 쇄국 정책으로 차단된 외국에 인재를 보내 일본 어린이의 건강을 연구하고 방책을 희구하는 모임의 명칭으로 등장한다. 무메이는 열다섯의 나이까지 살아 남은 관계로 헌등사로서 국제의학연구소로 떠난다. 

다와다 요코는 세상이 뒤집혔다는 관용적 문장을 실현하듯 재난 이후의 비관적 미래를 뒤집히고 전복된 양상으로 그렸다. 노인은 건강하고 아이들은 죽어가며, 아이들의 성별은 갑자기 전환되기도 한다. 다와다 요코는 소설의 시발점을 분명히 밝혀두었다. ▶"일본이 이렇게 되고 만 것은 지진이나 쓰나미 탓이 아니야. 자연재해뿐이라면 훨씬 오래전에 극복했을 테니까 말이야. 자연재해가 아니야. 알겠어?"

한편 무메이는 애초에 건강과 풍족을 가져본 적 없기에 스스로에게 연민을 느껴본 적이 없으며 무언가를 욕망하지도 않는다. 일종의 신인류로서 다만 무메이는 자신의 안에 지구가 있다고 믿고 자연이나 일본 바깥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상상한다. 학교에서는 사고 이전의 시대를 구문명이라고 호명하며 현재보다 덜한 것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현실의 사회가 한차례 무너지고 그와 유리된 삶을 살아가는 무메이는 얼마간 새 인류, 새 시대로서 미래를 위한 불빛이 될 수 있는가.

다와도 요코는 현재의 일본을 응시하며 단정적인 비난을 쏟거나, 파국을 예단하지 않고 불가해한 미래를 성찰한다. 그곳에서 비판적으로 헌등의 가능성을 묻는다.

▶손자는 들판에서 피크닉을 하고 싶다고 늘 말했었어. 그런 사소한 꿈조차 들어줄 수 없는 건 누구 탓인가, 무엇 탓인가, 들풀들은 오염되어 있는데. 어쩔 생각인가. 재산, 신분에는 잡초 한 줄기 정도의 가치조차 없다. 들어, 들어, 들어, 귀이개로 귀지 같은 변명을 파내고 귀를 기울여서 잘 들으란 말이야.

사진=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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