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적인 것과 모던한 것의 조화...'백석 시전집' (오늘의 책)

오늘 주목할 만한 시집 백석, '백석 시전집白石詩全集'

2025-07-31     이나영 인턴기자

(MHN 이나영 인턴기자) 오래도록 주목 받는 시집으로 시인 백석의 시를 모은 '백석 시전집'을 소개한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 이후 평안북도 정주로 돌아가며 북한에서 여생을 보낸 시인 백석은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자,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로 평가 받는다. 그의 본명은 백기행으로, 좋아하는 시인이었던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이름에서 '석(石)'자를 빌려와 필명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분단 이후 문학사에서 부당하게 배제되어 연구가 활발하지 않았으나 북한 문인 해금 조치가 이루어진 이후부터 큰 조명을 받으며 중·고교 교과서에도 익숙하게 등장하는 이름이 되었다. 

'백석 시 전집'은 그의 첫 시집인 '사슴'에 수록된 시 33편을 포함해 미발굴의 시 61편과 7편의 산문을 엮은 도서로 1987년 출간되었다. 서울대학교 권장 도서 100선에도 이름을 올린 불후의 시인이자 시집이다.

■백석시전집白石詩全集|이동순 엮음|창비

백석은 가장 조선적인 것을 가장 모던한 방식으로 구현한 시인이라고 불린다. 현대의 색채와 전통적 요소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

그가 1936년에 발간한 시집 '사슴'에 수록된 시들에는 고향을 배경으로 한 토속성과 향토성이 엿보인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여우난곬족'에는 공동체적 유대와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가득한 일종의 신화적 공간으로서 고향이 잘 드러난다. ▶"배나무 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려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 엄매, 사춘 누이, 사춘 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 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뽂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시 속에 방언을 소생하고 향토적인 음식의 이름을 거론하는 등 보존된 모국어를 통해 고향의 회복을 염원하는 서정적 세계를 구축했다. 

1941년 잡지 '문장'에 발표한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백석은 "가난한 늙은 어머니"와 "조용한 개포 가의 나지막한 집" 등 그리운 과거가 영사되는 흰 바람벽을 응시하며 이런 글자를 본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여러 지역을 여행하고 방랑했던 그는 '서행시초' 연작, '북방에서', '고향' 등 각 지역의 풍물을 주제로 시를 섰고 유랑의 과정에서 체감하는 외로움과 슬픔을 풀어두기도 했다. 그의 시가 유년과 고향을 향하는 것은 이제는 훼손되었으나 회복해야 하거나, 회귀하고 싶은 호시절을 호출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토속적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이국적인 정취를 한껏 풍기는 시도 존재한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는 향토적 정서가 없지만 마찬가지로 이상을 그리는 현실 도피적인 의식이 드러난다. '나타샤'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으로, 그의 러시아 문학에 대한 동경이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알려져 있다. 가난한 청년의 저린 사랑과 흰 눈이 쌓인 설경의 이미지가 백석이 간직한 서정을 고스란히 펼쳐보인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전문

사진=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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