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16년 집권 시대, 이제 '두 번째 박주호'는 나오지 않을까

2025-02-28     권수연 기자
박주호 전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

(MHN스포츠 권수연 기자) 장작만 넣고 끝났다. 그토록 불탔던 '대한축구협회 개혁'의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지난 26일 서울시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제55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서 정몽규 회장이 1차 투표에서 총 유효투표 182표 중 156표를 얻어 결선 투표 없이 당선됐다. 

이로써 지난 2013년부터 제52~54대 축구협회장을 지냈던 정 회장은 연임 성공으로 16년 동안의 장기 집권을 이어가게 됐다. 

정몽규 제55대 대한축구협회장
27일 축구회관에서 제55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 출마 기자회견에서 공약을 발표하는 신문선 후보

이번 축구협회장 선거에는 총 3명의 후보가 도전장을 던졌다. 반(反) 정몽규 체제를 천명하고 나선 신문선 명지대 초빙교수, 허정무 전 축구대표팀 감독과 더불어 4연임에 도전한 정몽규 회장이다. 

최종 당선된 정몽규 회장에 대한 여론은 최악을 달렸다. 정 회장은 당초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자격정지 이상 중징계를 요구받은 상황이었다. 감사 결과 축구인 기습 사면 및 철회, 천안축구종합센터 건립 관련 보조금 집행 및 차익금 실행, 위르겐 클린스만 전 대표팀 감독 선임 개입 논란 등 27개 위반 사항이 드러난 탓이다. 

그러나 허정무 후보와 신문선 후보가 정몽규 회장에 대한 질타를 이어나가는 것 외에 뚜렷한 경쟁력이 없다는 사실이 더 절망적이었다. 현장 지지도가 극렬히 낮은 두 후보는 단일화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당초 국내 축구팬들은 정몽규 회장의 4연임만큼은 반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가능성이 없던 게임이었다. 반 정몽규를 천명한 두 후보는 지지층이 얇다는 것 외에도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신문선 후보는 '돈을 버는 협회'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걸었고, 허정무 후보는 '투명함과 공정함'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그러나 현실적인 실천 가능성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이를 보완할만한 재정적 기반이 두 사람에게는 거의 없었다. 정몽규 회장의 재력을 타파할만한 혁신적인 포인트와 신선함도 보이지 않았다. 신뢰감을 주지 못했던 후보들은 초라한 득표 수로 밀려났다. 

정몽규 회장의 앞에 남은 것은 이제 문체부의 징계 문제다.

박주호 전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

애시당초 문체부의 징계를 끌어낸 것은 전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으로 활약한 박주호의 폭로였다.

발단은 홍명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문제였다. 

지난해 7월 8일, 박주호 전 위원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인 '캡틴 파추호'를 통해 축구협회의 감독 선임 과정을 상세히 폭로했다. 

이 날은 축구협회가 홍명보 울산 HD 감독을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공식 선임한다고 발표한 다음 날이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은 지난 2월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 경질 후 5개월간 두 명의 임시 감독 체제를 거치며 줄곧 공석이었다.

홍명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유튜브 영상을 통해 박 위원은 대중에 알려지지 않았던 대표팀 감독 선임에 대한 내부 현황과 축구협회의 고질적 전횡 등을 상세히 꼬집었다. 정해성 전 전력강화위원장의 사퇴 전까지 12번 가량의 회의를 거쳤으며, 협회 내부에서는 외인 감독보다 국내 감독을 훨씬 선호한다는 사실 등을 모두 폭로했다.

또한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이 경질된 후 임시 감독 선임 이야기도 전해졌다. 박 위원은 당시 적법한 절차가 아닌 적당한 한국 감독 후보군(박항서, 홍명보, 황선홍)을 추려놓고 투표로 결정했다고 전해 충격을 안겼다.

더불어 박 전 위원은 유튜브 영상을 촬영하던 도중 홍 감독이 대표팀 감독에 앉았다는 소식을 기사로 접하며 충격 받은 모습을 보였다. 이 영상을 통해 박 전 위원은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전하기도 했다. 

국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발언하는 박문성 축구 해설위원

박 위원의 이러한 초대형 폭로에 축구협회 측은 '내부고발자' 낙인을 찍고 거센 반박에 나서는 일도 벌어졌다. 

그 외에도 이천수, 박지성, 이동국 등의 축구계 선배 소수가 박주호의 발언에 힘을 실었다. 국회에 국민청원이 올라갔고 여야 의원들은 감사 자리에 정몽규 회장, 홍명보 감독, 이임생 이사, 박주호, 박문성 해설위원 등을 증인으로 불렀다. 

구정물 싸움이 된 축구협회의 자정을 가장 간절히 바란 사람들은 축구팬들이었다.

그러나 끝은 결국 정몽규 4연임이었다. 기꺼이 뽑힌 '축구계의 새 시대'는 없었다. 박주호가 국내 축구판에서 자신의 입지를 자처해서 좁히며 내밀었던 소신은 156표 앞에서 한 줌 재가 됐다.

한동안 소신을 가진 젊은 행정가가 축구협회에서 나올 수 없는 판이 된 것이다. 

국회에 출석한 홍명보 감독이 박주호 전 전력강화위원과 인사한다

이를 두고 크게 좌절한 축구팬들은 다시 박주호 채널에 모여들었다. 한 팬은 "현실은 참담하다, 저는 항상 박주호님을 응원하겠다"는 댓글을 남겼고 또 다른 팬은 "정몽규 회장이 썩어서 축구계가 이렇게 된 줄 알았는데 축구계가 썩어서 정몽규 회장이 나온 것"이라고 개탄의 목소리를 냈다.

투표 후 박문성 해설위원은 27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대부분의 축구 관련 종사자들이 생계가 걸려있다"며 "정 회장에 반대되는 투표를 하면 이 바닥에서 먹고살기 힘들어진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정몽규 회장은 당선과 동시에 업무를 시작하며 임기는 오는 2029년 초 열리는 축구협회 정기총회까지다.

 

사진= MHN스포츠 DB, 연합뉴스, 캡틴 파추호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