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윤리와 법을 기만한 ‘공장식 대리수술’, 의료계 변화는 가능한가?

의사가 아닌 영업사원이 수술대에? 비윤리적 관행이 빚어낸 대리수술 스캔들, 피해자는 여전히 침묵 속에 방치 환자의 존엄을 짓밟은 '유령수술'... 법과 윤리가 무너진 의료 현장의 비극적 단면

2024-12-11     주진노

(MHN스포츠 주진노 기자) 최근 드러난 일명 ‘공장식 대리수술’ 사태는 의료계가 처한 구조적 문제와 윤리적 붕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충격적 사건이다. 한 병원에서 비의료인을 조직적으로 동원해 인공관절수술을 비롯한 고난도 수술을 대리로 수행하도록 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며, 의료 현장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하고 있다.

이 병원은 의료윤리와 법적 규범을 명백히 위반했음에도 불구하고, 합법성 운운하며 현실성이 부족한 법령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궁색한 변명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매우 분명하다. 생명과 직결되는 수술 과정에서 의사 대신 영업사원에게 의료행위를 맡겼다는 점, 그리고 그 행위들이 대리수술과 유령수술이라는 용어로 불릴 정도로 조작되고 은폐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법적 미비나 제도적 허점 문제가 아니라, 의료인 스스로 의료 윤리를 저버리고, 이윤극대화라는 저급한 동기 하에 환자의 안전과 존엄을 희생한 반(反)인도적 범죄 행위에 가깝다.

 

이 병원에서 하루에 수십 건의 수술이 ‘공장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의료의 본질’을 돈과 생산성 논리에 종속시키는 위험한 사고방식이 실재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수술 집도의, 보조 의료인력(간호사) 등 숙련된 의료진이 투입되어야 할 자리에, 병원 측은 비용 절감과 이윤 확대를 위해 비의료인인 영업사원을 충원했다.

이들은 의료법상 허용되지 않는 범위를 넘어서 피를 흘리는 환자를 상대로 뼈에 드릴을 박고, 인공관절을 삽입하는 망치질까지 담당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병원 측은 이를 단순 ‘보조’라고 강변한다. 이는 의료 윤리와 상식을 모욕하는 반사회적 언어유희일 뿐이다.

 

더한 심각한 문제는 아직까지 피해자 상당수가 자신들이 ‘대리수술’, ‘유령수술’의 희생자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할 보건당국은 현재 관련 법령과 제도가 정비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피해자 통보나 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법령 미비를 이유로 피해자들에게 침묵하는 것은 2차 가해를 방치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대리수술, 유령수술이 최종적으로 유죄로 판결된다면, 보건당국은 적극적으로 피해자 구제와 지원에 나서야 한다. 제도 개선을 통한 의료환경 정비는 물론이고, 실질적인 피해 회복 절차를 신속하게 마련해야 한다.

의료계의 일부에서는 의대정원 문제나 인력 부족, 현실과 동떨어진 법령을 언급하며 이번 사태를 정당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그러나 이는 책임 회피와 본질 흐리기에 불과하다. 의사가 부족하다면 수술 건수를 줄이고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의료 윤리의 기본 원칙이다. 환자를 ‘돈벌이 수단’ 정도로 치부하고, 법과 윤리를 단순한 장식품으로 여기는 마음가짐이 오늘의 비극을 낳았다.

이제 재판이 진행 중이고 시민단체들은 분노와 경각심을 담아 이 문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다 하나, 진실이 밝혀져 유죄가 확정된다면, 이번 사건은 ‘단순한 비도덕적 행태’가 아닌 ‘범죄’로 기록될 것이다. 상해죄, 사기죄 등 관련 법적 책임을 묻고, 반드시 엄정히 처벌해야 한다.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제도 개선, 윤리 교육 강화, 의료환경 개선 등 다각적인 대안 마련이 뒤따라야 한다.

‘공장식 대리수술’은 의료계에 던져진 차가운 경고다. 이제는 이러한 파렴치한 불법 행위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의료인 스스로 윤리의식을 재무장하고, 제도적·법적 장치를 정비하며, 보건당국과 사회 전체가 경각심을 갖고 나서야 할 때다. 이윤보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더 이상 ‘의료’라 부를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