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일의 하키야사] 중랑천 스케이트장은 어디로 가고... 16. 구타 그리고 도망
대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그때 고대 숙소는 비원 앞에 있었다. 앞에 설명했던 용궁여관이다.
우리는 봄철 대회에서 우승했다. 상대가 어느팀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우승파티를 한다고 막걸리를 마셨다.
그 때 고대생들은 보통 막걸리를 냉면접으로 퍼 마셨다. 냉면 대접에 가득 따라 돌아가면서 꿀떡 꿀떡 마셨다. 한 사람이 반드시 세모금 이상 마시고 나면 옆자리 동료에게 냉면대접을 넘겼다. 고대생만의 특이한 주법이었다.
축하파티가 끝나고 나서 당시 김만영 코치가 술에 거나하게 취했다. 만영선배는 나를 화장실 앞으로 불러 내더니 느닷없이 주먹으로 때렸다. 내가 그날 축하파티에 조금 늦었는데 그게 불만이었던 것이다. 나는 결승전 경기가 끝나고 난 뒤 여자친구가 와서 잠깐 만나고 왔는데 만영선배는 그걸 알았고, 술에 취해 나를 두들겨 팬 것이었다.
보통 많이 얻어 터진게 아니었다. 내가 하도 맞자 여관집 주인이었던 어머니가 "왜 그렇게 세일이를 때려?" 라며 말려줄 정도였다. 숙소 어머니의 도움으로 나는 겨우 고통에서 벗어났다. 눈탱이가 밤탱이가 될 정도로 맞은 것이었다.
내 방으로 돌아와 거울을 보고 나니 설움이 복받쳤다. '내가 이렇게 얻어 터지려고 고려대학에 왔나'하는 생각이 드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짐을 쌌다. 대회도 끝난데다 얻어맞으면서까지 운동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곽일섭 선배가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아마도 김만영선배가 술이 깬 후에 곽선배를 보낸 것 같았다. 곽선배가 와서 "만영이형이 너 데리고 오란다"고 했다. 나는 "고대 안다니겠다"고 버텼다.
나는 결국 곽선배의 설득에 꽁했던 마음을 풀고 생각을 바꿨다. 김만영선배는 "세일아 내가 어제 술에 취해서 그랬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요즘엔 선배의 구타가 없어졌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때는 운동선수는 얼굴, 엉덩이는 내것이 아니었다. 일본식 교육에 익숙해 있던 스포츠계는 구타가 선수들 다루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얼굴이 퉁퉁 붓고 멍이 들어 나는 일주일 이상 숙소에서 꼼짝도 못했다. 김만영선배도 미안해서 그랬는지 나와 함께 계속 숙소에 있었다. 이후에도 김만영선배는 가끔 술을 먹으면 주사가 발동했다. 그때는 도망가는게 상책이었다. 선배의 술버릇을 알고 난 뒤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