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일의 하키야사] 중랑천 스케이트장은 어디로 가고... 10.경희대의 납치
어쨌든 다시 학교로 돌아온 나는 전국체전에 참가하기 위해 동대문링크에 갔다. 동대문링크는 내가 중3 때 문을 열었고, 모든 대회가 그 곳에서 열렸다.
경희대는 박영균(전경희대교수) 감독이 맡고 있었다. 한일여관이라는 곳이 숙소였다.
경희대와 광성고 감독을 겸직했던 박영균감독이 대회 전에 작전회의를 하자고 했다. 게임 전이라 의심할 여지가 없었던 나는 여관 골목길로 들어선 순간 ‘아차’ 싶었다. 눈앞에는 택시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문4개를 모두 열어 놓은 택시.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택시에 타지 않으려고 전봇대를 붙잡고 버텼지만 소용이 없었다. 덩치 큰 선배 4명이 나를 번쩍 들어 택시에 집어 던지니 속수무책이었다. 택시는 어디론가로 질주했다. 그 뒤 2개월 동안 나는 다시 집에 가지 못하는 신세였다.
내가 처음 끌려간 곳은 신설동에 있는 여관이었다. 그리고 1주일 동안 서울 근교를 돌아다녔다. 매일 숙소를 바꿔 고려대에서 나를 찾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항상 두 명의 감시조가 따라 붙었다. 김창진, 주재황, 장영일, 김정국 이렇게 네 명이었다.
모두 다 광성고 선배들이었는데 4명이 2인 1조가 되어 번갈아가며 나를 꼼짝도 못하게 했다. 나는 주로 방구석에서 하루 종일 갇혀 있었다. 선배들은 밤에는 술을 사줬다. 그 때 매일 마셔댔던 술 때문에 나는 술실력이 늘었고, 지금도 술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솔직히 고백하지만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때 배운 술이 습관이 됐다.
체격이 좋은 주재황, 김정국 선배는 둘 다 술고래였다. 밖에서 술을 사다가 방에서 마셨는데 어떤 때는 열병 넘게 소주를 마신 적도 있다. 그 뒤 수원 용주골로 거쳐를 옮겼다. 사도세자 능이 있는 곳인데 민가를 빌려 한 달 넘게 있었다. 시험기간까지였다.
고대 입학시험이 끝나고 나니 서울운동장 앞에 경희대가 운영했던 호텔같은 숙소로 옮겼다. 그리고 닷새 정도 지나고 나서 나를 내보내줬다. 그동안 경희대 선배들의 쇠뇌공작으로 내 마음은 이미 경희대로 기울어 있었다.
경희대 선배들에게 붙잡혀 있을 때 이준철 선배가 면회(?)를 왔다. 두 달 동안 아이스하키 장비를 입은 채로 갇혀 지냈으니 내 몰골은 꼬질꼬질 그 자체였다. 내복이나 사복도 없이 지냈던 것이다.
이준철 선배는 새 옷을 사다줬다. 나는 경희대 추리닝과 내복을 입고 귀가했다. 감금상태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