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표승주를 보고 미소짓고 있는 IBK기업은행 김호철 감독ⓒ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사진= 표승주를 보고 미소짓고 있는 IBK기업은행 김호철 감독ⓒ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MHN스포츠 권수연 기자) 외인선수와 감독을 모두 교체하는 초강수를 펼쳤음에도 IBK기업은행은 갈 길이 멀다.

기업은행은 직전경기인 지난 6일, GS칼텍스전에서 세트스코어 0-3(25-27, 23-25, 20-25) 셧아웃 패를 기록하며 좀처럼 반등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로써 개막 후 7연패에 이어 또 다시 7연패를 기록하며 사령탑인 김호철 감독 또한 어깨가 한층 더 무거워졌다. 

게다가 11일은 현재 여자부 1위를 달리고 있는 현대건설과의 경기가 예정되어 있다. 쉽지 않은 일정이다.

'컴퓨터세터' 라는 별명을 가진 명세터 출신 김 감독이지만 여자배구 감독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지난 해 12월 18일, 첫 여자배구 데뷔전을 치른 후 "남자배구와는 모든 것이 다르다"는 말로 어려움을 드러냈다. 남자배구판에서 '호통왕' 이었던 그는 여자배구판으로 건너오며 '소통왕' 으로 변신했다. 

당시 김 감독은 "선수들이 쫓아올 수 있으면 강하게 말하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말해도 선수들이 쫓아오지 못한다"라는 말로 부드러운 리더십을 강조했다. 

김 감독의 체계적인 훈련 아래 선수들의 기세는 조금씩 살아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요원하다. 김희진이 이를 악물고는 있지만 라셈과 교체된 달리 산타나가 아직 몸이 올라오려면 멀었다. 산타나는 지난 6일, 득점 2점에 공격성공률 22%대를 기록했다. 

사진= 김주향을 보고 미소짓고 있는 IBK기업은행 김호철 감독ⓒ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사진= 김주향을 보고 미소짓고 있는 IBK기업은행 김호철 감독ⓒ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그렇지만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즌을 시작했기에 승리보다는 팀을 다지는 것이 급선무다. 

지난 2003년, 방신봉 등 주전선수들이 이탈한 현대캐피탈 항명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첫 술에 배부르지는 않았다. 

당시 현대캐피탈 김상욱 전 단장의 부탁을 받고 달려온 김호철 감독은 "첫 해에는 한 번이라도 삼성화재를 이기고, 두번째 해에는 삼성화재를 넘어서고, 세번째 해에는 우승을 차지하겠다" 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2004 시즌, 삼성화재 상대로 연패하다가 마침내 삼성화재의 77연승을 기어이 꺾는데 성공했다. 

이어 2005, 2006 시즌에는 아예 꺾는 것을 넘어서서 통합 우승까지 달성해냈다. 

지난 2012-13시즌에는 마찬가지로 박희상 전 감독과 선수들 간의 내홍을 겪어 성적이 밑바닥에 있던 러시앤캐시 (현 우리카드) 팀을 맡았다. 시즌 초반에는 개막 후 8연패를 당하는 등 처참했지만 2라운드 중반부터는 강팀들을 족족 꺾으며 플레이오프권 직전 성적까지 달성해냈다.  

2013-14시즌, 다시 현대캐피탈로 돌아온 이후에도 1위 삼성화재를 꺾는 등 준수한 성적을 내며 사령탑으로써의 능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재밌는 사실은 당시 기업은행은 여자부 1위를 달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그도 지금보다 더 한 연패를 겪기도 했다. 지난 2018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 네이션스리그(VNL) 남자 대표팀을 맡을 당시, 11연패만에 겨우 중국을 상대로 셧아웃 첫 승을 땄다. 

기업은행은 현재 어려운 길을 걷고있다. 봄배구가 아니라 1~3위권 강팀들을 상대로 따는 '첫 승' 이 목표가 되었다. 그렇게 자신감을 되찾는 것이다. 지난 2003 시즌의 현대캐피탈과 비슷한 상황이다. 막내구단도 아니고 창단 10년이 넘는 고참구단이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배구판을 뒤흔든 내홍을 겪은 선수들이 마음을 단숨에 잡고 영화처럼 갑자기 승리를 일궈내기란 쉽지 않다. 사령탑이 몇 번이고 교체되며 내부 호흡이 계속 흔들렸다. 주전선수는 포지션이 바뀌며 적응에 애로사항을 겪었다. 그 동안 이미 안정화된 다른 팀은 빠르게 손발을 맞춰 저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런 상대 팀들을 갑자기 붙들어 꺾기란 쉽지 않다. 

사진= 지난 해, 성탄절을 맞아 산타클로스 모자를 쓴 IBK기업은행 김호철 감독ⓒ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사진= 지난 해, 성탄절을 맞아 산타클로스 모자를 쓴 IBK기업은행 김호철 감독ⓒ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사진= 산타나와 하이파이브하며 미소짓는 IBK기업은행 김호철 감독ⓒ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사진= 산타나와 하이파이브하며 미소짓는 IBK기업은행 김호철 감독ⓒ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선수들이 불쌍할 정도로 기가 죽은 상황, 새 사령탑은 '호통' 을 잠시 밀어두고 '소통' 을 강조했다. 선수들과 '마니또 게임' 도 하고, 셧아웃 패를 당했어도 서로를 끌어안으라 지시했다.

'아빠 리더십' 을 천명한 이상 김 감독은 옛날처럼 맹렬하고 빠르게 달릴 수 없다. 아기 걸음마에 맞춰 걷는 아빠처럼 이끌어야한다. 선수들의 재기가 느려도 발을 맞추는 것이다. 물론, 수확도 있다.

기업은행은 지난 달 23일, 괄목할만한 경기를 펼쳤다. 현재 2위 강팀인 한국도로공사(16승 5패, 승점 45점) 를 상대로 풀세트 접전을 펼친 것이다. 비록 세트스코어 2-3으로 지긴 했지만 상대를 위협하기에는 충분했다. 

당시 진땀승을 거둔 도로공사 김종민 감독은 "기업은행이 굉장히 좋아질 것 같다" 고 평했다. 이제 선수들이 외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훈련에만 매진했다는 증거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이미 알고 있는 선수들의 성장은 빠르다.

다만, 뒷심이 부족한 것이 결정적 문제다. 백업 없이 홀로 뛰는 라이트 김희진을 받쳐줄 전력도 필요하다. 이 부분을 해결할 전력이 산타나인데 아직까지는 요원해보인다.

이제 남은 것은 김 감독의 '소통' 방법에 달려있다. 이 모자란 '뒷심' 을 잡아줘야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아직까지는 선수들이 져도 웃어주고있지만 뒷심을 잡기에는 어딘가 조금 부족해보인다. 이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면 팀 성적 쇄신 책임의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과연 계약이 종료되는 오는 2024년까지 김 감독이 계속 '소통' 체제를 유지할 것인지, 결국 '호통' 으로 돌아설 것인지 궁금해진다. 기업은행의 패배에도 눈길이 모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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