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북한의 주특기인 카드섹션 장면, Talksports 
사진= 북한의 주특기인 카드섹션 장면, Talksports 

(MHN스포츠 권수연 기자) 북한은 부족한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이전부터 트레이닝과 생활체육을 꾸준히 실시하는 등 스포츠에 국가적인 지원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12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본격적인 집권 이후, 최룡해 등 핵심 간부들을 중심으로 국가체육지도위원회를 창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포츠 자체가 성과주의, 계급상승으로 직결되는데다, 폐쇄적 성향이 강한 북한 특성상 국제대회에서는 사실상 '악동' 으로 통한다. 

북한과 국제 스포츠계, 특히 한국과의 악연은 지난 1986 서울 아시안 게임부터 시작된다. 그 이전에도 1984 뮌헨 올림픽에 정치적인 사유를 대며 불참했지만, 한국에게는 유난히 적대적이었다. 심지어 국제대회와 1988 서울 올림픽이 열리지 못하도록 일종의 방해공작까지 펼쳤다. 

그 전부터 북한은 한국의 국제적 입지 확장을 지나치게 경계하며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 개최를 해야한다" 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지난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사태 당시 시위대의 모습을 촬영해 "이렇게 위험한 국가에서는 국제대회를 열 수 없다" 며 선전한 것도 모자라, 지난 1986년 9월에는 김포공항 쓰레기통에 폭발물을 넣어 일가족을 사망에 이르게 한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 사건' 까지 벌이기에 이르렀다.

사진= KAL기 공중폭파 사건의 주범인 대남공작원 김현희, 연합뉴스 자료사진
사진= KAL기 공중폭파 사건의 주범인 대남공작원 김현희, 연합뉴스 자료사진

가장 큰 사건은 지난 1987년 11월 29일에 벌어진 대남 특수공작원 김현희의 KAL기 공중폭파 사건이다. 당시는 1988 서울 하계 올림픽이 열리기 10개월 전이었다. 김현희는 당시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김포공항으로 날아오던 대한항공의 보잉707기에 액체 시한폭탄을 심었다. 해당 사고로 기내에 탑승하고 있던 승객 115명은 전원 사망했다. 

그러나 북한의 이와 같은 만행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북한과 당시 친교를 맺고 있던 쿠바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88 서울 올림픽에 참가했던 것이다. 당시 북한은 비슷한 정치적 사상을 가지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불참을 원했지만, 돌아온 결과는 정 반대였다.

이와 같이 북한이 가장 큰 경계를 보인 것은 단연 한국이었다. 그러나 그 밖에도 국제무대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이 계속 터져왔다.

사진= 역도선수가 손에 초크가루를 바르고 있다, pixabay
사진= 역도선수가 손에 초크가루를 바르고 있다, pixabay

대표적으로 지난 1974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벌어진 북한 역도선수 김중일의 도핑 사건을 들 수 있다. 김중일은 용상 1차 180kg 실패 후 락커룸으로 들어가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폭발시키는 에페드린을 대놓고 복용했다. 그는 용상 2차를 성공한 직후 경기위원회에게 도핑 사실이 적발되었다. 김중일은 아시안게임 사상 최초로 도핑혐의를 받아 금메달 3개와, 같은 해 마닐라 세계대회, 이듬해 모스크바 세계대회 출전권까지 몽땅 박탈당했다.

또한 북한은 같은 해 아시안게임 여자농구 경기에서도 사건을 터뜨렸다. 한국이 전, 후반전에서 북한을 이기자 "남조선에 지느니 기권패를 하겠다" 고 선언하며 경기 중도에 나가버리기도 했다. 

지난 1978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도 '악동' 북한이 벌인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한국과 북한이 붙은 남자농구 경기에서 51-37로 크게 한국이 앞서고 있을때, 별안간 북한 농구선수가 오심을 주장하며 심판의 멱살을 잡고 허공에 띄웠던 것이다. 이 일로 북한은 몰수패를 당했다. 

사진=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에서 벌어진 심판 폭행사건,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사진=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에서 벌어진 심판 폭행사건,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역대급으로 큰 사건은 바로 주심 집단폭행 사건이다. 지난 1982년, 뉴델리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준결승전에서 북한은 쿠웨이트에 2-3으로 패배했다. 문제는 패배에서 그치지 않았다. 북한 선수단이 태국의 피지트 주심에게 오심 판정을 뒤집어씌워 단체 폭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관중 7만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심은 선수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어 관중석에서 흥분한 북한 관중들도 뛰어나와 폭행에 가담했다. 당시 신문에는 피지트 주심이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퇴장하는 사진이 적나라하게 찍혀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일로 북한은 국제축구연맹으로부터 2년간 모든 국제대회 출전 금지를 당했다. 

지난 2006년 7월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호주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이하 AFC) 여자 아시안컵 중국과의 준결승 경기에서 1-0으로 패배하자, 북한 선수들이 이탈리아 출신 주심인 안나 데토니에게 발길질을 날려 출전 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나이조작 사건도 있었는데, '광숙 돌기' 기술을 개발한 체조선수 김광숙이 3년 연속 본인의 나이를 15살로 기재한 사실이 드러나며 지난 1993년 세계선수권대회 참가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 밖에 지난 2015년 미국 휴스턴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용상 62kg급에서, 역도선수 김은국이 레트로졸 도핑으로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당시 김은국을 제외하고도 여성선수인 김은주와 리정화를 포함, 총 8명의 북한 역도선수가 도핑테스트에서 걸려 줄줄이 탈락했다.

사진= 지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북한 역도선수 김은국, 연합뉴스
사진= 지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북한 역도선수 김은국, 연합뉴스

이처럼 북한 선수들이 막무가내로 나가는 이유들 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폐쇄주의' 와 '성과주의' 다. 한번만 체육영웅이 되면 일반인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신분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엘리트 체육인들의 평생 숙원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중형을 받았던 선수의 가족이나 지인은 징역에서 풀려나 운전기사나, 혹은 매니저로 신분이 일약 상승하는 경우도 생긴다. 

실제로 육상선수 정성옥의 아버지는 화물차로 사람을 치는 사고를 내고 재판 중에 있었다. 그러나 딸이 '공화국 영웅' 이 되자 단번에 풀려나며 딸의 운전기사가 되어 TV에도 출연하는 등 유명세를 탔다.

또한, 더 나아가서는 국가의 위상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에, 과거부터 적대시했던 주변 국가들과의 경쟁심을 도에 지나칠 정도로 불태우고 있다. 그만큼 패배한 체육인들에 대한 처벌도 엄격했다.

가혹한 처벌 또한 북한선수들이 국제 스포츠계가 정한 규칙에 격렬하게 '반발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패배를 인정하는 순간 고국에 돌아가 징계를 당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한국, 미국, 일본선수에게 패하면 중벌을 받았다. 패배한 선수들은 치안 유지를 주 임무로 하는 인민보안부 교화국의 18호 관리소로 보내져 징역형을 받았다. 미국선수들에게 패배하면 4개월, 일본선수들에게 패배하면 3개월의 징역을 살아야 했는데, 한국선수들에게 패할 경우 무려 반 년 동안이나 '죄수' 신세를 면치 못했다. 

사진= 평안북도 철산군에 위치한 북한 탄광 내부 사진, MirrorUk
사진= 평안북도 철산군에 위치한 북한 탄광 내부 사진, MirrorUk

물론 처벌 기간은 선수의 출신과 신분, 그간 세운 공적에 따라 경중이 조절되었다. 실제로 북한 국가대표 출신 탈북 유도선수이자 공훈체육인 칭호를 받은 이창수(54)는 지난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정훈(52)에게 패배한 이후 삼진 탄광에 끌려가 이틀 간 복역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당시 북한 측은 '혁명의식과 당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해서 패배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 는 이유로 공공연히 체육선수들을 처벌했는데, 승패가 선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닌데다 패배하면 중형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급기야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선수들의 불만이 커지자 결국 북한 측은 패배한 선수에 대한 형벌을 현재 '사상투쟁(사상교육)' 형으로 대체했다. 다만 이 사상투쟁형도 선수와 감독들에게는 만만찮은 처벌이다.

해당 형벌은 세포비서나 초급당비서라는 북한 노동당 조직지도부의 하부 조직 책임자가 조직원을 모아놓고 '투쟁 대상자' 를 일으켜 세워서 공공연히 비판하는 방식이다. 이후 같은 체육계 동료들이 대상자를 둘러싸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식으로 형벌이 이어진다.

이처럼 공정한 기준과 규칙이 존재해야 할 스포츠에까지 정치적인 사상을 도입하는 바람에 북한 운동선수들 사이에는 운동에 전념하는 목적을 운동이나 승부 그 자체가 아닌 신분상승이나 평양 거주권 획득, 가혹한 처벌회피 등의 도구로 삼는 주객전도 현상이 만연해있다. 

사진= 갈라진 남북 관계, Pixabay
사진= 갈라진 남북 관계, Pixabay

현재 북한은 모든 국제대회에 잇따라 불참하며, 최근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이하 IOC)로부터 국가자격 참가 정지 처분까지 받아 오는 2022년 2월에 열릴 베이징 동계 올림픽 참가조차 불투명해졌다. 북한 선수들은 개인선수 자격으로만 동계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측에서는 아직까지 이에 대해 어떤 입장도 공식적으로 내놓지 않은 상태다. 

사실상 북한이 체육계에서 다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밖에 없다. 동시에 개방적인 자세로 엘리트 체육인들의 해외 훈련을 적극 지원하고 국제사회를 향한 공격적인 태도를 지양하며, 스포츠계에 정치적 사상 주입을 중단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중국의 왕이(王毅) 국무위원과 만나 "2022 베이징 올림픽에서 남북관계가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의 공식적인 대응은, 같은 날 오후 12시 34분에 동해상으로 미사일 두 대를 날린 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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