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국 기계체조 국가대표 선수 여서정, 여서정 인스타그램 계정(본인)
사진= 한국 기계체조 국가대표 선수 여서정, 여서정 인스타그램 계정(본인)

(MHN스포츠 권수연 기자) "아빠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못 땄다, 메달을 따면 꼭 아빠 목에 걸어드리겠다"

초등학교 2학년 꼬마가 일기에 쓴 귀여운 글귀다. 단순히 멋 모르는 아이의 장래희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아직 애띤 귀엽고 동그란 얼굴이지만 체조선수로 변신하는 순간 달라진다. 구름판을 딛는 발은 그 누구보다 강단있고 비상은 대담하며 날렵하다. 착지는 발랄하면서도 안정적이다. 

지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자신이 만든 기술인 '여1'과 '여2'를 완성도 높은 동작으로 선보이며 은메달을 획득한 전(前) 국가대표 기계체조 선수 출신 메달리스트 여홍철의 바람과, 초등학생 딸이 쪽지에 썼던 소원의 합이 꼭 맞아 떨어졌다. 

여홍철은 "딸이 도쿄 올림픽에 나가서 메달을 땄으면 좋겠다" 고 말했고, 딸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면 아빠 목에 걸어드리겠다" 고 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기계체조 선수 여서정(19, 수원시청)은 그렇게 아버지에 이어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꿈을 실현시켰다. 이 메달은 대한민국 여자 기계체조 사상 첫 메달이기에 의미가 더 깊다.

사진= 한국 기계체조 국가대표 선수 여서정, 여서정 인스타그램 계정(본인)
사진= 한국 기계체조 국가대표 선수 여서정, 여서정 인스타그램 계정(본인)

여서정의 천부적인 재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버지 여홍철은 두 말 할 것도 없고 어머니 김채은 역시도 기계체조 선수 출신이다. 어머니는 지난 1993년 동아시아 게임에서 도마 동메달,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하고 현재는 대한체조협회 전임지도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야말로 온 집안이 메달리스트 체조선수 출신이다.

때문에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전문 선수들의 연습장면을 자연스럽게 접한 여서정은 9세 나이에 체조에 입문했다. 이후 3년만인 만 12세때 전국체전에서 크게 활약했고 중학생 때도 두각을 드러냈다.

본격적으로 상을 휩쓸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 시절인 지난 2018년부터다. 이 때부터 여서정은 거의 메달을 '주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지난 2018 국제체조연맹(이하 FIG) 기계체조 월드챌린지컵 여자 도마 부문에 출전해서 금메달을 딴 것을 시작으로, 2018년 제18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기계체조 도마 부문에 마지막 순번으로 출전해 대한민국 여자 체조 사상 32년만에 금메달을 획득했다.

여담으로 당시 KBS 해설위원으로 중계석에 앉은 아버지 여홍철은 실시간으로 딸의 금메달 기록을 지켜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진= 여서정이 획득한 도쿄 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건 아버지 여홍철, 여서정 인스타그램 계정(본인)
사진= 여서정이 획득한 도쿄 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건 아버지 여홍철, 여서정 인스타그램 계정(본인)

이후 지난 2019년 FIG 기계체조 월드컵 대회 도마 금메달, 같은 해 제3회 코리아컵 제주 국제체조대회 도마 금메달의 쾌거를 이뤘다. 그리고 마침내 2020 도쿄 하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선수 개인의 피나는 노력과 재능이 합쳐지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여실히 증명했다. 

여서정은 아버지 여홍철이 '여1', '여2'를 만든 것처럼, 지난 2019년 자신의 이름을 딴 도마 기술을 등재했다. 기술 이름은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활용한 '여서정' 이다. 초반 등재 난도는 6.2였으나 최근 도마기술 규정이 변경되며 5.8로 하향되었다. '여서정' 은 현재 여자 도마기술 규정상 두 번째로 높은 난이도의 기술이다. 

그러나 이런 눈부신 기록을 세운 뒤에는 선수 개인의 남 모를 고충도 있었다. 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어린 나이부터 시작한 체조선수 생활이 너무 고되어 한 때는 선수생활을 포기하려 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고민은 2020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더 깊어졌다. 

사진= 한국 기계체조 국가대표 선수 여서정, 여서정 인스타그램 계정(본인)
사진= 한국 기계체조 국가대표 선수 여서정, 여서정 인스타그램 계정(본인)

아버지 여홍철은 그런 딸을 다독이며 "그만둬도 괜찮으니 이번 대회까지만 치르고 다시 말해보자" 고 격려했고, 그 격려는 딸이 한국 최초 여자 기계체조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는 커다란 발구름판이 되었다. 대기록을 세우고 다시 한번 의욕이 생긴 여서정은 올림픽 이후 "격려해준 부모님께 감사하고 앞으로도 지켜봐달라" 고 말했다.

현재 여서정은 하계 올림픽의 흥분을 뒤로 하고 새로운 기록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10월 18일부터 일본 기타큐슈의 종합체육관에서 제50회 FIG 기계체조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해당 대회에는 도쿄 올림픽의 감동주역인 도마 금메달리스트 신재환(제천시청), 도마의 신 양학선(수원시청), 여서정이 출격해 다시 한번 메달을 위해 도약한다.

여서정은 한 공중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본받을 것이 많은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는 말을 남겼다. '여홍철의 딸' 에서 후배들이 뒤따를 '여서정' 으로 성장해가는 그는, 이제 다가올 2024 파리 올림픽의 금메달 주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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