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N스포츠 김종민 기자] 프로의 세계는 냉정해서일까. 역사의 주인공들이 트로피를 번쩍 들어올릴 때, 스포트라이트 옆을 스쳐지나간 선수들이 부지기수로 많다.

최초의 스타 플레이어를 꼽자면 스타크래프트1 브루드워에서는 단연 임요환일 것이다. 뛰어난 실력, 황무지나 다름없던 e스포츠 판의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상징성이 결합된 선수였다. 

많은 이들이 임요환을 '황제'로 만든 선수를 홍진호로 꼽지만, 홍진호 역시 당대의 최강으로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으며 현재도 인지도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둘의 대결은 현재 진행형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홍진호보다는, 로열로더의 자리를 '황제' 때문에 놓치게 된 이 선수가 더욱 피해자(?)에 가깝지 않을까.

초창기 프로게이머이자 최초의 쌍둥이 선수로 활약했던 저그, 장진남-장진수 형제를 만나보자.

사진=온게임넷 영상 캡처
사진=온게임넷 영상 캡처

■ 팀플레이의 명수, AMD 드림팀의 형제

장진남과 장진수는 쌍둥이 형제로, 1세대로 분류되는 2000년부터 e스포츠에 뛰어들었다. 그렇지만 형인 장진남의 데뷔와 전성기가 다소 앞서고, 동생인 장진수의 전성기가 다소 늦는 바람에 두 형제가 함께 스타리그나 MSL에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다.

두 형제는 스타크래프트1 오리지널 시기부터 팀플레이로 유명했는데, 각종 팀플레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오리지널부터 2000년까지 팀플레이에서 두 형제가 같은 저그로 참여했지만, 이후 팀원의 종족은 서로 달라야한다는 규정이 추가되며 둘 중 한 명이 프로토스를 선택하게 된다. 당시 형제 저그의 뛰어난 실력이 '팀원은 서로 다른 종족' 룰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팀플레이에서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장진남과 장진수 형제는 AMD 드림팀이라는 팀의 초창기 멤버였는데, 당시 다른 팀원으로는 기욤 패트리, 베르트랑, 조정현 등이 소속된 강팀이었다. 이후 이 팀은 e스트로(이스트로)로 이어진다.

AMD 드림팀 프로필, 사진=SNS 캡처
AMD 드림팀 프로필, 사진=SNS 캡처

형 장진남은 특유의 저글링 컨트롤이 상징이었다. '저그 대마왕' 강도경을 상대로도 5대6으로 크게 뒤지지 않을 정도였으며, 덕분에 저그전과 프로토스전에 강했다.

문제는 테란전이었다. 특히 임요환을 상대로는 비공식전까지 포함해 4대15로 밀렸다. 처음 참가했던 스타리그인 2001 한빛소프트배에서는 로열로더의 자리를 얻지 못하고 임요환에게 3대0으로 패했다. 이 이후로, 저그는 테란을 결승전에서 잡지 못하는 징크스가 생겨 2005년 박태민, 박성준에 의해서야 겨우 깨지게 된다.

사진=ONG 영상 캡처
사진=ONG 영상 캡처

그렇지만 장진남은 스타리그 우승자였던 기욤 패트리에게는 유독 강했으며, 당대 유명했던 '한 방 테란'인 김현진, '천재' 이윤열, '퍼펙트 테란' 서지훈 등 쟁쟁한 강자들과 자웅을 겨뤘던 선수였다. 실제로, MSL의 전신인 KPGA에서는 4강에서 이윤열을 상대로 5세트까지 가는 접전을 보여줬다.

장진수 역시 유사한 성향의 게이머로, 프로토스전에는 강했으나 테란전에는 약했다. 당시의 테란 라인을 잇던 임요환, 이윤열, 서지훈 선수와 접전 끝에 패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2003년 올림푸스배 스타리그 8강(토너먼트가 아닌 조별리그 형식으로 운영)에서는 임요환을 잡아내기도 했다.

사진=OGN 영상 캡처
사진=OGN 영상 캡처

장진남은 2003년부터 공식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않아 2004년 은퇴했으며 장진수는 2005년 은퇴했다. 두 선수는 모두 군복무를 마치고 e스포츠 업계에 돌아와 방송에 출연했다.

장진남은 김택용의 3-3 혁명과 스타리그 경기를 보고 "저런 프로토스를 이기는 저그가 있을까"라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장진수도 온게임넷의 게임자키로 방송활동을 하며, 당시 EVER 스타리그 2008 결승전 박성준과 도재욱의 맞대결에서 박성준의 승리를 점쳤다. 박성준은 장진수의 예상대로 화려한 부활과 함께 골든 마우스를 거머쥐었다. 

■ 장진남과 장진수의 대표 경기

장진남은 유독 프로토스전에 강했던만큼, 프로토스와의 대결을 꼽았다. 로열로더에 도전했던 한빛소프트배 기욤 패트리와의 경기로 맵은 네오 블레이즈다. 이 경기에서는 기욤 패트리가 센터 전진게이트를 시도하고, 저그는 본진 투해처리로 이를 수비하며 게임을 가져간다. 장진남의 저글링 활용이 돋보인 경기다.

프로토스의 질럿 러시, 사진=OGN 영상 캡처
프로토스의 질럿 러시, 사진=OGN 영상 캡처
저글링 우회로 일꾼 사냥, 사진=OGN 영상 캡처
저글링 우회로 일꾼 사냥, 사진=OGN 영상 캡처

장진수의 경기는 올림푸스배 스타리그 8강 임요환과의 일전을 꼽을 수 있다. 당시 맵은 네오 비프로스트로 임요환은 바이오닉 러시-전진 팩토리라는 파격적인 조이기 라인을 형성했고, 장진수는 이를 빈집 러시로 극복한다. 결국 전진 라인이 '본진'이 돼버린 임요환. 임요환은 새로운 '본진'이 돌파 당하며 패배한다.

임요환의 조이기 라인, 사진=OGN 영상 캡처
임요환의 조이기 라인, 사진=OGN 영상 캡처
조이기 라인 돌파, 사진=OGN 영상 캡처
조이기 라인 돌파, 사진=OGN 영상 캡처

한편, 군복무 이후 프로게이머가 아닌 방송인으로 돌아왔던 형제. 장진남은 2010년 결혼 후 장진수와 함께 외식 전문점을 꾸렸으나 그만두고, 아프리카TV 소속의 방송에 2014년까지 출연했다.

조용호, 김동수 등 올드 게이머의 근황을 전했던 박정석-강민 또한 "이들 형제의 근황이 궁금하다"고 언급한 것을 보아, 업계로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팀플레이의 명수였던 이들이었기에, 어디서든 멋진 협동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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