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N스포츠 김종민 기자] LoL(리그 오브 레전드)의 역사를 말하는데 이 팀을 빼놓을 수 있을까.

이 팀은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SKT T1이라는 이름보다, 선수들이 낯선 탓이었다. 그러나 면모를 뜯어보면 이 팀은 떡잎 시절부터 기대를 받을만 했다.

2013년 혜성같이 등장해 세계를 제패한 SKT T1 K를 만나보자.

사진=OGN 영상 캡처
사진=OGN 영상 캡처

■ 김정균 코치의 안목으로 꾸려진 팀, 시즌2 솔로 랭크 '패왕'들

SKT T1 K는 2012년 겨울 SKT T1 #2라는 팀명으로 출범했다. 당시 SKT 구단에는 1팀이 있었으나 1팀이 잠시 리빌딩 과정을 겪어, 2013 LCK 서머 시즌에는 2팀이 단일 팀명인 'SKT T1'을 사용했다. 그럼에도 이후 '뱅' 배준식, '마린' 장경환, '울프' 이재완 등이 속했던 SKT T1 S와 구분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2팀을 SKT T1 K로 칭한다.

대다수 구성원이 신인이던 SKT T1 K였지만,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이들은 LoL 시즌2의 솔로 랭크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솔로 랭크는 현재와 같은 티어 제도와는 다소 달랐고, 레이팅 점수에 따라 순위을 매겼다.

그 레이팅에서 최상위권에 자리했던 '고전파', '장병기마스터', '광진이야'가 이 팀으로 합류했다. 당시 김정균 코치는 "아마추어 고수들을 50명 가량 주시하고 있었으며, 테스트를 통해 입단 절차를 밟았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제닉스 스톰에서 활약했던 '임팩트' 정언영과, 과거 유명했던 AOS 장르 게임인 카오스에서, '코치'라는 닉네임을 썼던 전설적인 선수 '푸만두' 이정현이 팀의 멤버로 가세했다.

당시 솔로 랭크 순위, 사진=커뮤니티 캡처
당시 솔로 랭크 순위, 사진=커뮤니티 캡처

이 팀은 오프라인 예선을 가뿐히 통과하고 LCK 스프링 12강으로 진출했다. 이들은 본선 첫 경기에서 포킹 조합, 니달리-제이스를 활용해 전통의 명가인 CJ 엔투스 블레이즈 팀을 잡아낸다. 지금도 회자되는, '페이커' 이상혁의 니달리가 '앰비션' 강찬용의 카직스를 솔로 킬 내는 장면은 세대 교체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후에도 본선에서 SKT T1 K는 다소 기묘한 챔피언들을 선보였다. 모데카이저, 피들스틱 등을 서포터로 활용하고, 미드에서도 자주 사용되지 않던 르블랑을 적극 골랐다.

8강에서 나진 실드를 제압하고 4강에 진출한 T1 K, 4강에서는 대회 최종 우승팀이자 삼성 화이트의 전신인 MVP 오존에게 패했지만, CJ 엔투스 프로스트를 상대로 3-4위전에서 승리한다. 첫 데뷔 시즌부터 3위라는 호성적을 낸 T1 K. 라인전과 로밍 능력, 캐리력을 갖춘 미드 라이너 페이커와 공격적이고 센스 넘치는 플레이를 보여준 바텀 듀오 피글렛-푸만두가 두각을 드러냈다.

■ 역스윕으로 우승해 롤드컵 가다, '아리-바이'

2013 LCK 서머 시즌에서도 SKT T1 K가 좋은 경기력을 이어나갔다. 16강과 8강에서는 단 한 경기도 내주지 않았다. 4강에서 만난 상대는 지난 시즌 패배의 쓴 잔을 삼키게 했던 천적, MVP 오존.

1세트 오존에게 패배했으나, 이후 '아리-바이'의 성공적 활용, '왕귀'한 임팩트의 블라디에 힘입어 결국 결승에 진출한다. 오존의 명실상부한 에이스, '마타' 조세형의 픽을 견제한 것이 주요한 전략이었다.

결승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2012년의 최강 형제팀 CJ 엔투스 프로스트-블레이즈를 모두 제압한 KT 롤스터 불릿츠(KT B)였다. 비가 내리는 잠실에서 결승전이 펼쳐졌다.

결승전, 사진=OGN 영상 캡처
결승전, 사진=OGN 영상 캡처

결승전 1-2세트는 KT B의 압승이었다. 첫 세트에는 T1 K가 KT B의 타워를 하나도 파괴하지 못할 정도였다. '스코어' 고동빈의 이즈리얼, 트리스타나가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인섹' 최인석의 자크도 명품이었다.

3세트 분위기를 뒤집은 것은 역시 '암살자+바이' 조합이었다. 페이커의 제드, 푸만두의 자이라가 맹활약했고, '벵기' 배성웅의 바이는 칼같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15분만에 1만 골드를 앞선 압도적인 경기였다.

4세트도 '아리-바이'였다. T1 K는 상대 챔피언을 끊어 먹는데 특화된 조합을 구성하고, 쉔까지 가져오면서 운영상의 우위를 점했다. 결국 게임은 블라인드 픽의 마지막 세트로 향했다. 마지막 5세트에서는 희대의 명장면이 탄생했고, KT B는 뒷심이 부족했다는 평과 함께 "경기 시간이 길어져 배고파 진 것"이라는 밈을 만들어냈다. 안타깝게도, KT B는 선발전에서도 T1 K에 의해 고배를 마셔야 했다.

제드 1대1, 사진=OGN 영상 캡처
제드 1대1, 사진=OGN 영상 캡처

■ 롤드컵 우승과 LCK 전승 우승의 기록

데뷔 시즌만에 바로 롤드컵(LoL 월드 챔피언십)에 진출한 김정균 사단. 조별 리그서 중국의 OMG에게 패배했으나, 이후 전승을 거둬 7승 1패로 8강에 진출, 8강에서도 압도적인 무력으로 4강에 진출했다.

당시는 LCK 리그가 가장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타 지역의 선전으로 삼성 갤럭시 오존이 조별 리그에서 탈락한 상황이었다. 북미의 C9, 유럽 전통의 프나틱, 중국의 OMG와 로열 클럽 등 명가들은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다만 그럼에도 LCK가 우세하다는 의견이 정론(正論)이었고, 4강은 그 LCK 팀 내전이었다. 여기서 승리할 경우 우승 가능성이 높은 상황. 엑스페션-와치-카인-나그네(쏭)-프레이의 나진 블랙 소드와 T1 K의 대결이었다.

2013시즌 다소 부진했던 나진 블랙 소드, 8강에서도 2대1로 아슬아슬하게 올라왔지만 경기는 접전이었다. 첫 세트를 나진에서 따냈는데, '나그네' 김상문은 라인전에서 페이커를 상대로 버티는 전략을 택했고, '엑스페션' 구본택의 잭스를 키워주자 잭스가 전방위적으로 활약하며 게임을 집도한다.

문제는 바텀 라인이었다. 공격적이면서도 든든한 라인전을 보여주던 '프레이' 김종인이 피글렛-푸만두를 상대로 주도권을 잡지 못하게 되면서, T1 K의 바텀이 라인전에서부터 앞서나갔다. 당시 푸만두는 독특한 룬-특성으로 해설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3세트를 나진이 미드 그라가스 활약으로 따내고, 4세트를 리신-오리아나 조합으로 되갚아준 T1 K. 마지막 세트에 다시 한 번 리신-오리아나 조합을 꺼낸 T1 K와 녹턴-쉔 조합으로 글로벌 운영을 염두에 둔 나진이 맞붙었다. 글로벌 조합이었음에도 운영-한타에서 밀리면서 나진은 무너졌고, 2세트를 제외한 전경기에서 자이라를 고른 푸만두는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다.

LCK 팀을 이긴 이상, T1 K를 막을 팀은 해외에 없었다. 우지가 속한 중국의 로열 클럽을 3대0으로 무너뜨리고, 세계 최강임을 증명한다. 당시 롤드컵 결승에서 롤드컵 최초 펜타 킬을 목전에 둔 피글렛의 이즈리얼을 상대로, 와드-방호-평타를 써 '스틸'에 성공했던 벵기가 화제였다.

리신의 펜타 킬 스틸, 사진=OGN 영상 캡처
리신의 펜타 킬 스틸, 사진=OGN 영상 캡처

한편, 많은 이들이 페이커의 우승 스킨으로 아리를 원했으나, 결국 제드가 선정됐고, 팬들은 그라가스가 아님을 안심하는데 그쳐야만 했다.

SKT T1 K는 귀국 후 WCG에서 의외의 패배를 했으나, 곧바로 LCK 2013-14 윈터 시즌에 최초이자 마지막의 '전승 우승'을 기록하며,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사진=T1 SNS 캡처
사진=T1 SNS 캡처

■ 부진은 있어도 몰락은 없다

이후 2014년, 각성한 삼성 형제팀과 나진, KT 등의 활약으로 T1 K는 왕좌를 놓치게 됐다. 당시 대내외적으로 사건과 이슈가 끊이지 않았던 것도 부진의 원인으로 꼽힌다. 결국 2014년 한국에서 개최된 롤드컵에는 T1 K가 참가하지 못했다.

이후 임팩트, 피글렛, 푸만두가 떠난 자리에서 다시 출발한 단일 팀 SKT T1은 왕조를 재건한다. '부진은 있어도 몰락은 없다'는 명제를 증명하듯, 벵기는 중요한 무대에서 귀신같이 부활했다. 페이커 역시 미드 라이너로서 최강, 최고의 선구자로 군림했다.

임팩트와 피글렛은 북미로 건너가 팀의 든든한 중심이 됐다. 임팩트는 C9과 팀 리퀴드에서 리그 준우승, MSI 준우승과 롤드컵 진출을 이뤄냈으며 피글렛 역시 리그 준우승 등을 기록했다. 임팩트는 여전히 현역이며, 피글렛은 지난해 은퇴해 개인방송, 이벤트 리그 등에 참여했다.

푸만두는 현재 코치로, 담원 기아에서 김정균 감독과 함께 팀에 기여하고 있다. 벵기도 2016년까지 SKT T1에서 롤드컵 우승을 기록하고 LPL로 진출했으며, 은퇴 후 군 복무를 마치고 코치로서 다시 T1에 복귀해 2군 리그를 담당하고 있다.

페이커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담원 기아 푸만두, 사진=담원 기아 SNS 캡처

SKT T1은 많은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만큼, 성적에 대한 높은 기대와 비판을 감내하게 되는 위치다. T1에 있었다는 것 만으로, 선수도, 감독도, 출신 게이머들도 주목을 받는다.

이들의 커리어에 뜻대로 풀리지 않는 부진이 있을 수도 있다. 다만, 끝내 부진을 극복하고 '몰락은 없었다'라고 당당히 선언할 앞날을 팬들은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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