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김여일 전 단장, KOVO
흥국생명 김여일 전 단장, KOVO

(MHN스포츠 권수연 기자) 팥 빠진 붕어빵, 닭 빠진 치킨, 주인공 빠진 사과문이다.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배구단(이하 구단)은 지난 10일, 임형준 구단주와 신용준 신임 단장의 이름을 걸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구단은 사과문을 통해 "구단의 경기운영 개입 논란, 감독 사퇴와 갑작스러운 교체로 인해 배구와 핑크스파이더스를 아껴주신 팬들께 심려를 드리게 되어 죄송하다, 또한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에게도 머리 숙여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사태는 배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경기운영 개입이라는 그릇된 방향으로 표현된 결과"라고 표현했다.

앞서 구단은 지난 2일 권순찬 전(前) 감독과 김여일 전 단장의 갑작스러운 동반 사퇴 소식을 전했다. 이후 권 전 감독은 방송사 인터뷰를 통해 구단 '윗선'이 선수 기용에 개입했음을 폭로했다. 

이 중심에는 흥국생명 모 그룹인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과 김여일 전 단장의 이름이 숨어있었다.

신용준 신임 단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선수 기용 개입은 없었고 김 전 단장과 권 전 감독 사이에 로테이션을 가지고 갈등이 있었다"며 해명했다. 그리고 로테이션에 대해 "팬들과 유튜브에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며 허술한 해명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후 김연경, 김해란이 "구단이 선수 기용에 개입해 선수들이 상처를 받았다"고 폭로하며 구단 측의 해명이 거짓임이 드러났다. 

이후로 감독대행을 맡은 이영수 수석코치와 김기중 신임 감독이 모두 사퇴 의사를 밝히며 흥국생명의 현재 상황은 아비규환 그 자체다. 선수들만이 묵묵히 경기에 나서고 있지만 상처받은 속내는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

사과문 또한 '대리사과문'이라는 비난을 피해가기 어렵다. 선수 기용에 관여한 사람 중 하나는 분명 김여일 전 단장이다. 

흥국생명 김여일 전 단장, KOVO
흥국생명 김여일 전 단장, KOVO
지난 2018-19시즌 선수단과 함께 한 흥국생명 김여일 전 단장, KOVO
지난 2018-19시즌 선수단과 함께 한 흥국생명 김여일 전 단장, KOVO

김 전 단장은 자진 사퇴라는 이름으로 선수단 운영에서만 손을 뗐을 뿐, 여전히 흥국생명에 남아있다. 구단을 통해 충분히 사과문, 혹은 억울한 점이 있다면 해명을 전달할 수 있는 위치다. 그러나 사건을 만들고서 정작 사과문에서는 발을 쏙 뺐다. 사과문에서는 그의 이름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다. 

김여일 전 단장은 지난 시즌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가 학교폭력 논란을 일으킬 때 끝까지 선수 등록을 강행하려 하며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당시 김 전 단장은 쌍둥이 자매의 징계 요구를 받고서도 "선수의 심신 안정"을 이유로 두 사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려했다.

재계에서는 '은둔의 경영자'라는 별명을 가진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 역시 마찬가지로 임형준 구단주의 이름 뒤에 숨어있다. 김여일 전 단장의 이름 뒤에도 함께 숨어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전 회장은 세간에 배구 매니아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사건의 지평선' 너머 윗선은 다 숨어있고, 엉뚱한 사람들이 사태 수습을 위해 뛰어다니고 있다. 신용준 신임 단장이 제대로 된 해명을 준비하지 못한 것도, 김기중 선명여고 감독이 급작스럽게 선임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 어떤 사람도 이 혼란을 수습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김연경의 말을 빌리자면 '회사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사람' 혹은 '현 사태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회사의 말을 고분고분 들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 감투를 쓰게 되는 것이다. 

구단이 사령탑의 무덤이 된 가장 큰 이유다. 여자부 7개 구단 중 흥국생명만큼 감독이 많이 바뀐 구단은 어디에도 없다. 창단 2년차인 페퍼저축은행을 제외하면 V-리그 출범 이래  현대건설 11명, GS칼텍스 12명, 한국도로공사 7명, KGC인삼공사 9명, IBK기업은행 4명의 감독이 거쳐갔다. 흥국생명은 20명이 넘는 감독들이 거쳐갔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분명 화력은 식는다. 그러나 마음대로 사고를 쳐놓고 식기만 기다리고, 잘못한 주체가 어린아이처럼 치맛폭 뒤에 숨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기업이 구단을 운영하는 목적은 홍보를 통해 좋은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지금 흥국생명의 이미지는 끊임없이 표류하고 있다. 배구단을 운영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게 됐다.

구단을 내일쯤 없애버릴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 이름을 달고 뛰는 선수들과 기업 이름을 외치는 팬들에게 기본적인 예의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흥국생명이 V-리그에 대해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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