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GS칼텍스전이 끝난 후 흥국생명 팬들이 '행복배구' 플래카드를 들고있다ⓒ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지난 5일, GS칼텍스전이 끝난 후 흥국생명 팬들이 '행복배구' 플래카드를 들고있다ⓒ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MHN스포츠 화성, 권수연 기자) 승패의 갈림길은 냉정했다.

지난 8일, 화성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2-23시즌 도드람 V-리그' 4라운드 여자부 경기에서 흥국생명이 IBK기업은행을 세트스코어 3-1(25-23, 30-28, 23-25, 26-24)로 제압했다.

양 팀 모두 득점 자체에 큰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이 날 승리한 흥국생명은 옐레나가 28득점(공격성공률 41.67%), 김다은이 19득점, 이주아와 김미연이 각각 12, 11득점씩을 기록했다. 기업은행은 산타나가 24득점(공격성공률 48.89%), 육서영이 16득점, 표승주가 13득점을 올렸다.

이 날 김연경은 정규시즌 개막 이래 처음으로 웜업존에서 경기를 지켜보기만 했다. 지난 5일 치러진 GS칼텍스전부터 컨디션 난조를 알렸지만 당일은 수액을 맞고 경기에 참여해 22득점을 올렸다. 그러나 이 날 경기에는 김대경 코치(감독대행) 및 트레이너와 상의 하에 무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며 경기에 불참했다. 

흥국생명은 김연경이 빠졌지만 최고참 김해란이 또 하나의 사령탑 노릇을 하며 후배들을 이끌었다.

이 날 김해란은 "마음을 추스리는데 집중하려 했다"며 "사실 쉽지는 않았다"는 말로 현재의 녹록찮은 상황과 컨디션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양 팀 모두 에이스가 결장한 상황에서 승패를 가른 것은 결국 독기와 집중력이었다. 

흥국생명 옐레나ⓒ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웜업존에서 선수들을 응원하는 흥국생명 김연경, KOVO
웜업존에서 선수들을 응원하는 흥국생명 김연경, KOVO

흥국생명은 지난 2일 권순찬 전 감독과 김여일 전 단장의 갑작스러운 동반사퇴를 알리며 커다란 논란에 휩싸였다. 경질된 권 전 감독은 방송사 인터뷰를 통해 선수 기용에 구단이 개입했음을 알렸다. 구단 측에서는 신용준 신임 단장이 "구단 개입은 없었고 김 전 단장과 권 전 감독이 선수 로테이션을 두고 갈등이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해당 로테이션에 대해서는 "팬들과 유튜브에서 말이 많이 나왔다"며 허술한 해명을 내놓아 실소를 자아냈다. 

그러나 이후 거짓해명에 분노한 김연경, 김해란이 직접 "선수 기용에 대해 윗선의 개입이 있었다"고 폭로하며 걷잡을 수 없는 파장을 일으켰다. 

사실상 윗선이 부재한 상황에서 선수들끼리 독기로 똘똘 뭉쳐 당분간 해당 난국을 타개하고자 한다. 김해란, 김연경, 김미연 등 베테랑 선수들이 앞장서서 제2, 제3의 감독 노릇을 하고있다. 이 날 경기 도중에도 김해란이 직접 나서 작전지시를 내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런 불투명한 무질서가 얼마나 더 지속될런지는 알 수 없다.

이 날 경기장에 김기중 신임 감독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국배구연맹(KOVO)에 따르면 "흥국생명의 감독선임 마무리 작업에 따라 8일 경기는 김대경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나선다"고 전했다.

지난 6일, 이미 공식적으로 감독 선임을 발표한 상황에서 흥국생명은 또 다시 대행 체제로 경기에 나서게 됐다. 해당 안내 또한 경기가 시작되는 당일 오전 9시에 급하게 공고됐다. 

흥국생명 김대경 코치(감독대행), KOVO
흥국생명 김대경 코치(감독대행), KOVO

이 날 대행을 맡은 김 코치의 경기 전후 인터뷰를 살펴보면 석연찮다. 김 코치는 이 날 경기 전 인터뷰에서 "아직 (김기중) 감독님과는 얘기도 못 나눠보고, 만나뵙지도 못했다"고 전했다. 경기를 마치고는 "사실 우리 코칭스탭 중에도 피해자가 많지만 아픔을 간직하고 다들 열심히 하고있다"며 다소 뼈가 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보통 구단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해도 선수단과 코칭스탭이 솔직하게 정황과 심경을 털어놓는 경우는 흔치 않다. 선수와 코칭스탭 모두가 작심한 상황이다. 

이 날 화성 경기장을 찾은 흥국생명 원정팬들은 여전히 보랏빛 '행복배구'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윗선이 벌여놓은 무책임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무고한 피해자들이 부서진 배의 키를 잡았다. 정신력으로 버티며 새들어오는 침몰을 악착같이 퍼내고 있다. 팬들은 허술한 구단 변명의 '총알받이'가 되었음에도 선수들을 향해 무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흥국생명은 이제라도 제대로 된 길을 그려야 한다. 정작 진실이 담긴 해명을 내놓고 직접 수습해야 할 당사자들은 침묵하고 있다. 

선수단이 어렵게 한 땀, 한 땀 이뤄낸 승리가 빛바라지 않도록 해야한다. 

흥국생명은 오는 11일, 홈 구장인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현대건설과 리그 투톱의 자존심을 두고 4번째 대결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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