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은 인류 역사의 추적 과정
불공정한 게임 세팅이 불평등한 결과로

사진=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사진=넷플릭스, 오징어게임

(MHN스포츠 노만영 기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은 인류 문명의 발전방향에 대한 거시적인 담론을 담고 있다.

※ 이 기사는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징어게임은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456억의 상금을 쟁취하기 위해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목에 등장하는 오징어게임처럼 어린시절 한번씩은 해봤음직한 놀이들이 게임으로 등장하며 여섯 번의 게임을 모두 통과해야만 상금을 가져갈 수 있다. 한 회차가 곧 게임의 시작과 끝을 다루고 있는만큼, 이 작품에서 게임은 매우 핵심적인 의미를 지닌다.

어느 참가자의 말처럼 이런 '애들 놀이'에는 복잡한 룰이나 어려운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다. 생산직에서 해고된 뒤 노모에게 용돈을 타서 쓰는 기훈도, 서울대 출신 증권맨 상구와 함께 쌍문동에서 오징어게임을 즐겨했다. 자본주의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패배한 참가자들 앞에 어린시절 뛰놀았던 '진짜 운동장'이 펼쳐진 것이다.

그렇다면 오징어게임은 과연 공정했을까? 그렇지 않다. 게임 속에는 온갖 반칙과 속임수가 난무한다. 더 큰 문제는 불공정한 게임 세팅이다. 

참가자들은 각자가 가진 능력을 모두 모으기 위해 성별과 나이를 초월한 연대체를 구성한다. 그러나 줄다리기 경기 이후 여성과 노약자들이 배제당한다. '고무줄놀이'나 '공기놀이' 등을 대비해 여성을 포함시켜야 한다던 상우도 줄다리기 이후 힘이 쎈 참가자와 짝을 이뤘다. 그리고 작품이 끝날 때까지도 고무줄놀이나 공기놀이는 등장하지 않았다.

사진=넷플릭스, 배제된 여성 참가자들이 서로 팀을 이뤄 연대하지만 이전의 게임과 다른 룰이 적용되면서 연대체 구성에 실패한다.
사진=넷플릭스, 배제된 여성 참가자들이 서로 팀을 이뤄 연대하지만 이전의 게임과 다른 룰이 적용되면서 연대체 구성에 실패한다.

오징어게임은 여성 차별의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게임을 거듭할 수록 참가자들의 수가 줄어들면서 이층침대들이 사라지고 벽에 그려진 그림이 드러난다. 이 벽에는 오징어게임의 여섯가지 게임들이 묘사되어 있다. 마치 선사시대 동굴 벽화를 연상시키듯 놀이 장면들이 간결한 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게임이 진행될 수록 식단이 부실해 지는 것 역시 물질문명의 역행을 의미하는 것이다. 부족한 식량으로 내분이 발생하고 서로를 죽이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탈락자를 사살하는 방식의 변화 역시 폭력의 역사를 뒤집어 놓은 것이다. 죄책감이 덜한 총으로 시작해 마지막에는 마치 철기시대를 연상시키듯 작은 나이프로 서로를 공격한다. 

인류 문명에 대한 알레고리는 VIP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징검다리 게임에서 절정을 이룬다. 참가자들은 마치 한 겨울 얼음이 언 호수를 횡단하는 원시인들처럼 유리로 된 징검다리를 건넌다. 경기 막바지에 불이 꺼지는 장면은 마치 어둠이 내린 밤과 같다. 불이 없는 인류는 위험 속에서 아찔한 횡단을 이어간다. 마치 맹수들을 연상시키듯 동물 가면을 쓴 VIP들이 인류의 목숨 건 이주를 관전하고 있다.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징검다리 게임 직후 남은 생존자들은 폭파된 유리 파편에 부상을 입게된다. 이 과정에서 얼굴에 작은 상처가 난 남성 참가자들과 달리 여성 참가자 강새벽은 복부에 입은 치명상으로 인해 과다출혈을 하게된다. 경기 내내 강한 모습으로 최종라운드까지 진출한 새벽은 출혈로 인해 약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사진=넷플릭스, 오징어게임 67번 참가자 강새벽
사진=넷플릭스, 오징어게임 67번 참가자 강새벽

새벽의 부상은 월경과 출산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던 원시사회의 여성의 상황을 상징한다. 이들은 공동체에 의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아니면 버려질 수도 있다. 새벽과 동행하려는 기훈과 달리 새벽을 낙오시키고 상금을 차지하려는 상우의 모습은 원시공동체 내에서 발생했을 갈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여성 차별의 역사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생물학적 특성으로 시작된 성차별은 남성 중심의 문명사회가 거듭됨에 따라 더욱 공고해졌다. 게임은 남성들에 의해 세팅되어졌고, 그 속에서 여성은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혔다. 오징어게임의 불공정성도 바로 여기에 있다. 참가자들이 게임 선정과정에 참여했다면 고무줄놀이나 공기놀이도 종목으로 채택됐을 것다. 만약 그랬다면 이 작품의 결말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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